'객관적 상관물'

이 개념을 처음 배운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이다.

그 때 나는 이 개념을 굉장히 싫어했다.

'꼴값도 이런 꼴값이 없구만'

나의 이런 관점은 혐오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고등학교에 입학해도 생각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전만큼 혐오의 수준 까지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그 개념이 실제 한다고 생각 하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흘러 고3이 되었을 때 그 개념을 아주 약간은 이해하게 되었다.

'길'이 인생을 상징하는 것, '태양' 이 정열을 상징하는 것 등등에서 그 예시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냥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워서 익숙한 것 뿐이지 않을까?

이런 일반적인 상징 말고, 진정으로 현대시에서 말하는 그 객관적 상관물...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 할 수 있다는...나에게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으면, 감조차 못 잡는 단어들로만 들리는데


그러나 이제는 작가들이 무엇을 쓰고 싶었는지 알 것 같다.


며칠 전 내가 중학교 시절 때 매우 자주 들었던 음악을 듣고 있을 때 일이였다.

그때 이후로 수년이 지났음에도,

그 노래는 현재의 나를 고스란히 옛날 그 감정으로 옮겨 놓았다.

분명 그 둘 사이에는 어떠한 과학적 연관성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그때 그 감정으로 연결되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 이다.


이런 현상은 머지않아 나에게 다시 일어났다.


내가 연습장을 찾던 중 우연히 발견한 검정 재활용지로 만들어진 노트.

나는 좋은 연습장을 찾았다고 생각하면서 노트를 펼쳤다.

내가 평소에 엎드려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나는 엎드려서 연필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때 맡은 재활용지 특유의 약간은 구릿한 냄새.

그 냄새는 곧바로 나를 영어 원서를 읽던 중학교 시절로 바려다 주었다.

전과 마찬가지였다. 이 냄새와 그것에 과학적인 연관이 있을리가.


이런 경험을 두 번 정도 하니 알 수 있었다.

두 경우 모두 내가 굉장히 자주 굉장히 오랫동안 했던 경험들 이란 것.

그 노래를 2년 동안 들으며, 그때마다 들던 그 감정

그 책을 읽으며 1년 동안 계속 맡은 그 냄새


과학적 연관성 따위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많이 반복한 경험, 그것 만으로도 나의 기억들은 매우 강하게 연결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객관적 상관물을 익숙함에만 의지해서 이해한 것이 아닌가? 라는 그 의문은 오히려 객관적 상관물의 본질을 가장 정확히 짚은 것이었다.

수 년 간의 경험으로 형성된 장기기억, 그것이 형성한 '익숙함' 그것이 가장 큰 본질인 것이다.


내가 시를 읽으며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제는 알겠다.

고등학생까지의 인생은 충분한 경험도, 충분한 시간도 제공하지 못하는 짧은 시간.

그러므로 나에게 시 속의 익숙함은 아직은 느끼기 어려울 수 밖에.


문학은 '삶'을 담은 것이라는 국어 선생님의 가르침.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삶'을 이해하기 위해선,

아니 더 나아가 그게 무엇이든,

이해하고 싶다면,


가끔은 꼭 기다려야만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