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란 것은 정말이지 문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작가로써 매 편, 지금 쓰는 소설의 결말을 어떻게 지을지 고민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이성이라는 것은 문학과 완전히 거리가 먼 것이어서,
어쩔 땐 해피 엔딩을 가져오고 싶고 어쩔 땐 끝없는 절망에 주인공을 내동댕이쳐버리는 결말을 작성해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참고를 위해 일요일 오전에 커피의 안주로 명작을 감상하더라도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어쩔 땐, (행복한 이야기가 적힌 무언가를 보면) 그것을 동경하여 내 소설에도 대입시키려 하고,
비애의 감정만이 희석되어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주는 무언가를 본 날에는 그걸 그대로 따라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행위 전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일부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문학의 근본적인 속성, 가면 뒤 얼굴이 이런 식의 감정론에 국한되었다고 확실히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과서나 사전을 보고서도 때때로 작성자의 감성적 센스가 돋보인다던가, 실없는 농담을 찾아냅니다. 때로는 숨겨 놓더라도 찾아냅니다. 아예 눈에 돋보기를 달고 찾기도 합니다.
이것은 이성과 로직에 지친 우리의 뇌가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잠시의 행복한 휴식을 취하려는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이상하죠, 뇌에 대한 생각은 우리 몸의 어디가 시키는 것일까요)
교과서도 소설도 시집도 서적이기 때문일진 몰라도 우리는 인산적인 면모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인간적인 면모는 감정에 휘둘릴 때 드러납니다.
아마도 그렇지 않다면 제가 어떤 책을 써서 사람들을 울리고, 웃게 만들며, 다시 울게 만드는 그런 사소한 일조차도 없을 겁니다.
감성이 일시적인 것이고 이성이 영원한 것이어서 이성만이 가치있는 것이고 결국 AI에 의해 감성을 부르짖는 자들이 멸망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그 무채색의 인간들에게,
저는 그 일시적인 면모, 감정적인 찰나의 가치를 큰 소리로 외치고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위 영원론이라는 이야기는 인간이 다루기에 너무도 큰 개념이고 그렇기에 부질없으며 실없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헛되고 헛된 일입니다. 모든 것이 헛됩니다. 짙은 먹구름을 뚫고 나오려는 한 줄기 달빛의 노력과도 같습니다.
사람이란 것은 , 그 전에 생물이며, 찰나에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영원할 것 같던 위신의 강자도 결국 백발에 주름살이 생기더니 육신은 안식의 허공에 흩뿌려지고 그 이름만 남습니다.
그런 미약한 존재들이 창대를 바라봤자 무슨 소용일까요.
창대를 넘어선 영원, 그것은 새우가 고래를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동경할 수 없고 동경할 수 없다면 바랄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 찰나에 살아갑시다.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일시적인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조차 일시적이라고 지적한다면,
저는 찰나의 행복에서 살다 영원히 죽겠습니다.
그렇게 죽어 부패되어, 엔트로피나 증가시켜 보죠.
제 인생이라는 소설의 끝에서 그런 참담한 결말이 기다린다 하더라도, 제 몸의 잔해는 여전히 다양한 색으로 빛날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언제 닥칠 지 모르는 죽음이 너무도 두려워서,
그걸 알고 있음에도 멈출 수 없는 저 가증스러운 시곗바늘을 저주하며,
안식의 방편을 찾아내기 위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한탄을 단순히 읽기 좋게 몇 문장의 긴 글로 바꿔서,
저도 모르게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의 삶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결국 누군가를 울리거나 웃겼다면 그것만으로 억만의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냥 나만 좋음 되는거지 굳이 타인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는 듯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