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들이 어릴때 실험실에서 자랐거던
모정에 굶주린 슈퍼맨이 회사 상사의 모유를 빨기위해 안간힘 쓰고
사실 이런 것들은 프로이트나 융의 시대 이전엔 나오기 힘든 예술이지
딸은 아버지를 통해 남성성의 결핍을 채우고
아들은 어머니를 통해 여성성의 결핍을 채우지
다시 늙은 딸은 아들을 통해 남성성을 채우고
늙은 아들은 딸을 통해 여성성을 채운다
박상륭을 이걸 진화의 동력으로 봤다 이동력으로 굴러가는 바퀴, 프라브리티라고 본 거야
여기서 재밌는 사실을 알 수 있지
극단이 서로를 추구하는 과정의 이유나 목적을 갈구하면 그건 예술의 끝자락에 걸리게 되는 것이고
그 과정의 즐거움이나 씁쓸함에 머무르면 더 보이즈가 되는 거야
그리고 그 목적에 대한 답을 내놓는 순간, 예술은 경전의 성격을 띄게된다
형이 늘 말하는 것, 예술이란 한 세대가 태어나 죽기 까지의 무언가라고 한 거 기억나느냐
경전이란 죽지 않는 생명을 위한 것이고,
사실 모든 생명이란 죽을 수가 없다 프라브리티의 질서 위에 있는 한 죽을 수가 없다고
문학이란 뭔가 그러면 답이 나오는 거다
니브리티와 프라브리티의 양극 속의 목적 없는 프라브리티
프라브리티 속의 프라브리티의 문학은 저속하게 되고
니브리티와 프라브리티 속의 프라브리티의 문학은 추앙받게 된다
즉 예술보다 종교가, 보다 높은 차원의 것이라는 것이면
인간의 의식은 그것이 그것보다 높다 혹은 낮다를 알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인간이란 니브리티와 프라브리티 양극의 산물인 동시에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 나가야 할지를 이미 태생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을 알고자 한다면 결국는 그 앎의 끝에 종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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