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을 경멸하고 멸시할 때는 신념과 가치에 어긋나는 사람을 경멸하고 멸시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신앙심으로서의 경멸과 멸시가 아니라 그저 전쟁욕구로서 경멸과 멸시인 것이다. 인간의 신앙심이 먼저 되고 신앙심을 바탕으로 전쟁욕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전쟁욕구가 먼저 되며 그것에 의해 신앙심이 생기는 것이다. 신앙에 전쟁이 배제될때 자유정신이 깃든다. 전쟁을 해야될 명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도덕 종교 신앙 믿음 보편성과 같은 관념을 이용해서 전쟁을 한다. 전쟁욕구를 신앙을 사용해서 용서하고 납득하는 것이다.
반창조적의지는 존재하지않는다. 각자 고통에는 창조적 뜻이 담겨져 있고 사랑과 전쟁은 서로 동시에 존재한다. 전쟁없이 사랑만 존재할수없으며 사랑없이 전쟁만 존재할수없다. 사랑과 전쟁은 새로운 생명을 위한 창조적 행위이다. 고통이 부족하면 사랑도 같이 부족해질것이다. 전쟁이 필요하고 고통이 필요해지는것이다. 그렇게 사랑과 고통이 식지않고 세계가 유지되는것이다.
폭력자 까지 수용 할 수 있는 강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해 폭력자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은 선한자들의 사랑밖에 이해 할 수 없다. 폭력자가 괴로워해야지만 폭력자의 사랑을 인간은 이해 할 수 있다.
진짜 강한사람은 자신이 이미 강하기 때문에 강해지는것에 욕심이 없고 관심이 없어서 힘을 과시하기위해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에는 빌런이 진짜 강한 정의의 용사한테 처발릴수밖에없는 구조이다. 빌런의 한계라는 이론이다. 강한인간은 이미 전쟁범죄자가 되지 않아도 될 강함을 가졌기 때문에 굳이 전쟁범죄자를 하지않는다. 하지만 빌런은 진짜 강한 인간에게 도전하고싶기 때문에 빌런이 되고 전쟁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더 이상 전쟁을 하지않을때는 인간이 스스로 강함을 만족할 때 전쟁은 종결난다.
나는 진실 된 투지를 원한다. 진실된 투지는 절대적인 힘이 기준이 되는 투지인것이다. 투지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약자가 강자들과 똑같이 투지를 갖는것을 예술가들이 미화시키는것이 불만이다. 강자는 겸손을 가져서는 안되며 약자는 오만해져서는 안되는 때가 언젠가 올것이다. 이는 약자와 강자 서로가 더 악독해져 더욱 강해지기 위함이다.
죄책감은 같은 종교인을 공격할때 느끼는 감정이다. 인간이 서로 팀킬을 하지않기 위한 감정이다. 종교가 다른 인간을 공격할때는 죄책감을 느끼지않는다.
양심은 죄책감에 의해 발생하더라도 결국에는 죄책감보다는 승부욕에 의해서 양심은 지켜진다. 또는 죄책감과 두려움을 혼동해서 두려움을 죄책감으로 착각하게된다.
악함의 본질은 자신은 더 강해질수있다는
믿음과 자신의 약함을 악함을 통해 해결할수있다는 믿음때문이다. 악인이 강해질수있는 이유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신이 더 강해질수있다는 믿음이다.
악인과 선인의 차이점은 악인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선인은 세계를 변화시킨다. 선과악의 공통점은 창조의지이며 창조의지가 없다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아무것도아닌 존재이다. 강한 인간성에 창조의지가 깃들기때문이다.
-1-
누구나 쉽게 -모른다-라는 말을 남발하면 지식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은 진짜로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식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며 -알고있다-라고 말하는 투지 있는 지식인도 멋지다.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은 인간성을 증명하는 행위이다. 단순히 창작하는 행위 자체로 인간성이 강해지고 고귀해진다. 다른 사람이 창조한것을 사용하기만하고 따르기만 하고 자신이 창작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에 사이비종교 신도처럼 자신의 인간성을 빼앗길것이다.
-2-
복수심과 분노는 자신이 나아지지 못했기때문에 생기는 악감정이다. 복수심과 분노로만으로는 제대로된 파워업을 할 수 없다. 과거에 자신이 어떤사람이였고 무엇을 하던사람이였으며 얼마나 행복했던지 불행했던지는 현재와 상관이없어야 한다.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은 완전히 다른사람이여야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