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침이 구른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시계를 풀어 탁상시계처럼 눈앞에 놓아두곤 한다. 빛 바랜 은색 손목시계 알 속 째깍째깍 작은 침들이 굴러간다. 들여다본다. 쉴 새 없이 쫓고 쫓기는 침들. 그 침 사이 공간을 응시한다. 이내 부풀어 오른 시간 속에 갇힌다. 언제부터 였을까 나는. 이 공간을 참 좋아했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항상 늦었다. 마치 다른 시간대에 사는 것처럼. 학교 행사에도, 축구 대회에도, 사적인 약속에도 항상 늦었었다. 그 덕에 우리 집 시계는 항상 십 분 빨랐다. 가장 막내인 초침이 조금 서둘러 돌았다. 둘째인 분침은 평소보다 조금 빨리 돌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여전했다. 나는 시침 같은 아이였다. 제 나름 빨리 움직이지만 남이 보기에 느림보였다. 하지만 이런 기질 때문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더욱 분명했던 것은, 초침이 빨리 돌수록 내 시간은 더욱 느려졌다. 초침과 분침 사이, 분침과 시침 사이. 밀려나고 밀려오는 저 공간의 흐름이 가속할수록 중력이 나를 더 강하게 짓눌렀다. 나의 시간은 또 다시 부풀어 올랐다. 또다시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간에 나는 젖었다. 

 

 결국 항상 30분 일찍 준비하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나 늦게 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휴대폰 시계 속에 설정된 알람 시계는 셀 수 없다. 내가 수면 위로 빠져나오지 못할 때 나를 건져내 줄 것이 필요했다. 몇 년째 이것에 의존하다 보니 분단위로 알람이 쌓여 있다.

 

 하지만 나는 밀려오고 부딪혀 밀려나는 이 시간의 흐름 속이 싫지 않다. 폭압적인 시간에 순응하며 살던가 이 부풀은 흐름 속에서 평생 살던가 누군가 선택하라 하면 나는 단연코 이 흐름 속에 살고 싶다. 내게는 그러지 않는 편보다 그러는 편이 훨씬 낫다. 이곳에  숨는 것은 침식된 나의 정신에 얹혀진 어머니의 손 같아서. 마치 뭉툭한 시침이 노면 위를 느릿느릿 쓸고 지나가듯이. 내면의 안개가 걷힌다. 이것 뿐이겠는가. 내가 시계를 들여다보면, 시계 또한 나를 들여다본다. 오 이마누엘 칸트! 나는 이 선험을 죽을만큼 사랑한다. 약속 시간에 늦는 게으른 존재로 규정될 지라도. 그 따위 것은 정말이지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밀어내고. 부딪혀 밀려나고. 이 흐름이 빵이 울컥하듯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그럴 때마다 나도 내 마음도 부풀어 올라. 고개를 뒤로 젖혀. 눈이 감긴다.

 

 알람이 울린다.

 흠뻑 젖은 나는 할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