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가짜


모든 종교는 가짜다라고 주장하면서 모든 것이 사라지고 혼돈이 되므로 그렇다는 블로그를 봤다. 영생은 없다면서.


그 블로그에 괜찮은 성찰들이 있긴 했다.


그런데 정보보존법칙은 양자역학이고, 빛은 모든 사물을 비친 적이 있고 모든 정보를 기록한다고 과학은 말한다.


수학이 세상의 기반이라는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의 말이 맞다면 칸토어의 집합론도 진실이 되고 고로 세상은 무한하다는 것이 된다.


순수학과 자연 속 수학의 일치는 뭐란 것인가? 


그런 게 죄다 과학으로 거짓친 거라고 주장할 것인가?


그렇다면 왜 존재하는가?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가 아닌가? 세상이 어떤 것이든 그 밖에 외계가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억지는 논파되지 않고 이는 불가지이다. 불가지 너머에 허무가 있는지 절대자가 있는지 인간은 결코 알지 못 할 수도 있다.


그 블로그에서 요한 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에서 말씀의 헬라어 원어인 로고스가 말(구라)라고 썼는데 로고스엔 말 말고도 이성, 절대진리, 존재원리란 뜻도 있는 데다가 모든 말이 거짓말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 블로그에서 얻은 성찰이라곤 세계 엘리트의 강대함, 성경이 당대의 문서라는 것 정도였다. 겨우 그 정도로는 불가지론은 논파 안 되고 고로 유신론도 부정 못 한다.


즉 내 사상은 전혀 타격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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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가지론자인데도 기독교 메시지에 어느 정도 경도되게 된 건 다음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 중 간증으로 보일 법한 부분은 빼는데 난 아직 크리스천이 아니기 때문이다.


30대 초반에 난 무신론에서 불가지론으로 개종하게 되는데 DC에서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라는 문장을 접했기 때문이었다.


보이는 것이 다라고 무신론은 외친다. 이는 이 세상 너머에 이 세상이 그 외계에 영향을 줄 수는 없지만 그 외계가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외계가 있을 수 있다는 문장으로 논파당한다. 이는 억지지만 무신론은 이를 논파할 수 없다. 때문에 논리의 불가지론이라는 말이 있고, 합리의 무신론이라는 말이 있다. 감정의 유신론이란 말도 있는데 사람들의 감정이 소중히 여겨지려면 신이 계셔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불가지론은 회의주의다. 철학은 전제가 없다. 이에 따라 어쨋거나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데카르트의 가정과, 완전히 세상을 지배하는 주체가 있다면 그분에겐 어떤 한계도 없을 것이란 사유에 입각해 논리를 전개해 본 결과 기독교 유신론과 극히 흡사한 결론을 얻었다. 이는 전지전능전선한 절대자 유일신을 부정할 방법이 없고 그런 주님이 있다면 자신과 사람들 포함 모든 의식이 서로 사랑하면서 살 것을 바라실 것이라는 것이었다.


차이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것 정도이고, 예수의 부활이 없었어도 기독교는 무너지나 유신론이 논파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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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신이 있다는 논리면 그냥 우주도 있을 수 있다는 무신론 논증이 있다.


이는 영지주의적 무신론적인 오만한 소리다.


이는 인간과 우주의 논리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교만한 발언일 뿐이다.


누구 마음대로 인간과 우주의 논리와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물론 이는 인간과 우주로선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계시다면 불가지 너머에 계실 주님께도 그렇다는 것은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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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왜 트럼프가 이겼는가에 대한 내용임.


스탈린은 '투표하는 자는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 한다. 투표를 세는 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했음. 실상 투표 제도는 그런 위험성을 안고 있음. 부정 선거 시비가 걸리는 이유.


트럼프 또한 여러 손동작으로만 봐서는 세계 엘리트의 일원일 뿐임.


그런 트럼프가 왜 기독교를 이야기하는가? 기독교는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의 적이라는 것은 확실한데도?


난 그 이유로서 일루미나티 무신론 세력이 논파당했기 때문도 있을 것이라 봄.


무신론의 전제 중 하나는 인간 이상의 지능이 불가능해야 함. 무신론적 세계관인 범신론에서 신은 강한 인간에 지나지 않고 논리도 인간 논리를 초월하지 못 함. 무신론은 아예 인간만 최고 지성으로 치고, 소피스트 세계관인 '인간은 만물의 영장'에 기반하고 있음.


그런데 이게 생성ai 등장으로 논파당함. 생성ai 보다 인간 중에 글과 그림을 잘 제작하는 사람은 존재하나, 생성ai 보다 그 수준의 글과 그림을 그 속도로 뽑을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음. 즉 이는 생성ai가 인간 지능을 초월할 가능성은 보였다는 것인데, 이는 절대자 주님의 존재에 관해 무신론에서 불가지론으로의 전환을, 그들 딥스테이트 세력이 맞이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봄.


추론일 뿐이니 자유만사 게시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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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매춘, 낙태.


이들 모두는 성에 관련되어 있다.


성에서 쾌락은 부수적이고 실상은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즉 함부로 다루면 인간의 가치가 가볍게 다루어지게 되는 영역이다.


피임과 성병 방지를 제대로 하는 방식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볼 뿐이다.


낙태는 산모와 아이가 건강하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미국 낙태 반대 진영에서 주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낙태 반대 진영에서는, 대체로 낙태는 원치 않은 임신에 대한 대응이니만치 태어난 인간들에겐 보다 강화된 복지가 행해져야 논리가 맞을 것이다.


성경의 오난 이야기는, 오난을 자위 행위 자체로 벌했다고 볼 수 없지 않을까 한다. 자위나 성행위를 안 하고 쌓일 경우엔 몽정으로 자동 배출되는 인간 육체상 정액이 사출되는 행위를 죄악시하긴 어렵다. 오난을 신이 벌한 것은 오난이 가족에 대한 책임을 안 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본다.


즉 책임이 핵심이다. 성은 쾌락으로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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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은 거의 모든 종교 보다는 선량하다.


수많은 종교들이 교주와 수령의 지배에 복무했다. 그들은 우상을 내세워 선동을 하고 자신들의 기분을 권력으로 관철시키기 위해서 그 같은 사상들을 이용했다. 이같은 나르시스트 소시오패스들이 많은 사이비들을 건설했다.


무신론은 적어도 모든 사람이 우주에 붙들린 작디 작은 존재라는 것은 말해준다.


그러나 무신론은 불가지 너머에 절대자 성부 하나님이 계실 수도 있기에 파스칼의 내기에 베팅해야 한다는 것은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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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요한 복음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내린다.


이는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구약에서의 계명 보다 진보된 것이다. 자신을 비하하고 죽이려까지 하는 자는 이웃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구약의 계명엔 있었다.


매우 어려운 원칙이고 더욱 높은 단계에서나 지켜질 수 있을 것이고 나도 물론 못 지키지만, 그래도 추구해야할 가치로 예수의 계명은 보인다.


하나님 아버지가 살아 계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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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에선 사제가 죄의 용서를 신에게 청하는 식으로 신도와 신 사이에 사제가 있는데 이에 대한 내 현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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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엔 개신교 해석이 맞아 보입니다. 사도에게 일단 넘겨진 것이긴 한데, 굳이 다음에 사제라고 안 한 것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너희가 메면 하늘에서도 메어 있을 것'이라는 말은 믿는 사람 전부에게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예수는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했는데 골방에서 기도가 가능하다는 건 하나님과 1:1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굳이 사제가 중간에 껴있을 이유가 없다는 개신교 해석이 맞다 봅니다. 물론 이는 천주교를 악마의 종교라고까지 할 문제는 아니고, 그리스 로마 종교와 타협한 결과로 보입니다. 일단 로마제국 종교 시스템을 흡수해야 교회가 하는 행정, 산업, 복지를 해나갈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당시 사마리아는 유대와 원수였고 다신교를 믿었습니다. 당대 다신교는 영아살해, 인신공양, 식인, 순장을 했거나 했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단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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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는 구약에, 요한 계시록은 신약에 각각 들어 있는 문서이고, 이는 즉 두 책 다 성경을 통해 늘 계시되고 있는 것이다.


두 책의 메시지는 당연히 섞여야 한다. 그러면 주님은 요한 계시록대로 멸망 단계들을 진행하시다가도 언제든 세상이 반성하면 요나서대로 진노와 멸망을 거두시는 분이라는 그림이 그려진다 본다.


이는 두 책을 모두 만족시키는 한 해석 방법이다. 두 책은 모두 성경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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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 장애인이 예배를 못 드린다는 구절을 두고 성경이 사악하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이는 전근대적이긴 한데 구약이다.


그 구절이 쓰여진 당시 히브리가 아닌 이방인들은 장애인이면 태어나자마자 죽였다.


살려는두라는 성경 말씀은 크나 큰 사랑이었고 그 정신이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그들을 보다 온전케 하기 위한 학문과 경제 발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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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레즈들이 레디컬 페미 사상 퍼뜨려 남성혐오해서 여자들을 고립시키고 젊은 여자를 레즈로 끌여 들여 가스라이팅코자 하는 레즈 사이비 종교가 페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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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신화거나 사기극이었어도, 기독교 교리가 진리라면 이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실제로 기독교 교리대로 살면 서로 사랑하게 되므로 갈등은 적어지며 행복한 가정과 사회가 되므로 설령 기독교가 거짓으로 세워졌더라도 사회 원리로 치면 따라갈만한 것이다.


이는 유신론, 무신론에 대한 불가지론과도 맞닿아 있다. 유신론, 무신론 둘 다 일단 물리주의를 따른다. 왜냐하면 물리주의 기반인 과학이 현상에 대한 가장 강한 해석이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인간 육체는 80일이면 모든 구성 원자가 교체되고, 모든 물질은 플랑크 시공간 아래 단계 현실에서도 생각만 해도 변화하므로 실체는 없다고 말할 수 있으므로, 물리주의 따르면 실체는 허무이다. 신이 있다면 이는 다만 그분이 세상을 과학으로 해설할 수 있도록 창조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종교는 형이상학, 과학은 형이하학이므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신론의 정점인 성경 유신론은 허무도 절대자의 피조물이라고 말한다. 무신론은 세상의 본질이 허무라고 말하는 세계관이다. 고로 절대자 주님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무하니 자아라는 걱정할 주체도 없고, 절대자 천주 성부가 계시면 모든 것을 합당하게 심판하실 것이니 걱정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유신론이 옳든 무신론이 맞든 인간은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뜻대로 헌신할 수가 있는 것이고, 무신론에선 이는 인간이 무엇을 하든 전혀 상관없기 때문이고, 유신론에선 그 믿는 바가 신의 편에 서는 것이라면 지극히 올바른 바가 되기 때문이다.


고로 유신론이 옳든 무신론이 맞든 신이 있는 것처럼 사는 것이 합당한 자세라고 한 조던 피터슨의 말은 바르다. 물론 이는 유신론과 불가지론에선 파스칼의 내기에 따른 자명한 결론이겠으나, 무신론에선 이는 그저 모든 삶이 허무하므로 어떻게 살든 상관없기에 나오는 발상으로 축소된다.


이와 같으니 주님이 계시다면 예수를 부활시켰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으니 그분이 기적을 일으키기로 작정하셨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수의 부활이 역사가 아니어도 유신론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확증되지 않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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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하느님 표현 온당한가.


기독교, 이슬람에서 신의 한글 번역으로 쓰는 말은 '하나님'이고,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이다.


하나는 실상 하날로서 하늘의 평안도 방언이므로, 이는 사실 하느님인 셈이다.


하늘은 김흥호 교수에 따르면 한늘의 변형이라 한다. 한은 무한한 공간, 늘은 무한 시간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는 절대자의 존재를 한정짓는 것이 아닌가.


무한 시공간이란 결국 시공간이 있어야 한다. 현대 물리학에서 우주가 무에서 태어났든 무한 시공간에서 태어났든 아무런 수학적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고 수학자 힐베르트가 말했다고 한다. 빅뱅은 시공간도 그때 발생했다고 정의되고 있다. 즉 신을 하느님이라 부르는 건 우주에 종속시키는 행위일 뿐이다.


유대교에서 신의 뜻은 '존재 자체'라고 한다. 그러나 이또한 실은 불경하다.


출애굽기에서 신은 모세에게 자신을 '나는 나다((I am Who I am, Ehyeh Asher Ehyeh)'이라고 소개한다. 이는 신이 인간에게 자신을 제대로 설명하면 이는 세상의 법칙에 대한 위배이므로 신이 세상 법칙을 존중해서 그렇게만 소개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신을 전적으로 이해하려면 신이 인간을 신으로 만들어주는 것 이외엔 아무 방법이 없다는 것이 불가지론의 한 요체이고 이로서 영지주의라는 무신론에서 벗어난다.


이는 불가지라는 인간 한계에 대한 인식이다. 불가지 너머에 절대자는 계실 것이나, 그 불가지도 여러 층위가 있을 수가 있다. 이는 인간이 일부만 알 수 있을 뿐 모든 것을 전적으로 알 수는 없다는 것으로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로 증명한 바이기도 하다.


신에 대한 온당한 표현은 따라서 '주님'이다. '성부'도 괜찮은 표현이다. '천주'도 하늘들의 주님이라는 뜻이므로 괜찮은 표현이다. '절대자 천주 성부' 또는 '절대자 주님'이 맞지 않을까 한다.


물론 하느님을 '하늘이신 님'이 아니라 '하늘들의 님'으로 생각하면 충분히 괜찮은 표현이니 안 바꿔도 된다. 이런 이름에 대한 논쟁 보다는 종교적인 생각 즉 개인 수양과 생활 즉 봉사 활동이 더 성경에 맞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