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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악몽이 무서운 이유는 잠결에 구현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흘러간 말들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모인다는 것은 안다. 꿈이 재생되는 공간이 있다면 내가 토막 낸 생명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 기괴한 형체들을 알아차릴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내게 은사라는 존재는 한 명이 아니었다. 그래봤자 둘뿐이지만 유일하게 그 부분에 있어서는 운이 좋다는 말을 자주 했다. 학창 시절에 만난 나의 첫 번째 은사는 내 분노를 표출할 수 있도록 도운 사람이었다면, 사회에 나와 만난 생에 마지막 은사는 화를 다스릴 수 있게 해준 사람이었다. 

그녀는 보호 쉼터를 운영했다. 나는 정신적으로 힘들 때마다 의사 대신 그녀를 찾아갔다. 어떠한 조언도, 반박도 없었다. 과한 몰입도, 강력한 수면제와 햇빛 보기 같은 해결책도 없었다. 단지 그 자리에서 웃으며 맞아주었다. 나를 배웅할 땐 또 오라는 말과 함께. 나는 그 인사가 참 좋았다. 여름이 되자 그곳에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학생들이 오는 상담실을 청소하고 나의 은사가 그 아이들을 편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상담 자료를 준비했다. 왜 부모가 되었는지 모를 사람들과 선택하지 못한 생을 원망하는 학생들. 떠오르는 주제는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내가 그 나이대에 하던 생각을 그대로 하고, 줄곧 하던 얘기를 여린 목소리로 똑같이 뱉던. 일찍 커버려서 슬픈. 그 아이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그럼 뭐라고 불러요? 그냥 아저씨나 저기요나 너 편한 대로 불러 선생님 빼고. 오빠는요?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됐고 오그라드니까 자원봉사자님이라고 해. 싫은데요? 제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를래요. 원장님도 오빠 동생하면서 잘 지내라던데요? 너 알아서 해라. 쌤 저는요, 여기가 집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여기만 오면 누가 죽었으면 하고 소원을 빌 필요도 없어지고, 오늘은 꼭 죽겠다는 의지도 사라져요. 쿵쿵거리는 소리에 심장이 막 두근대는 일도 없고요. 112랑 119를 고민할 필요도 없어요. 빛이 닿고 있지 않는 부분이 생각보다 많은 아이였다. 동질감은 어떤 매개체보다 강한 유대를 만들었다.

쌤 이거 노래 대박인데 들어보실래요? 뭔데? 너도 음악 좋아하냐? 당연하죠. 저 하루에 28시간씩 들어요. 쌤 센터 장기자랑 대회 같이 나가실래요? 상품권 준대요. 나 노래 못해. 그럼 제가 노래할 테니까 쌤이 춤춰요. 뭔 춤이야 너 혼자 해. 아 진짜. 같이 하면 제가 상품권 타서 드리고 한 달간 청소할게요. 화장실도? 화장실은... 어 됐어 어차피 안 해. 할게요. 두 달. 아 진짜. 세 달. 두 달요. 콜. 곡은 너가 정해라. 

우스운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 아이에게 하는 말이 꼭 과거의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무언가를 바로잡고 있다는 착각이 들어서. 듀엣을 준비하면서 노래보다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했다. 전부 털어놓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 가까운 지인에게는 할 수 없던 벽을 허무는 대화가 이어졌다. 우린 엉망인 화음을 내뱉었지만 어느 때보다 큰 호흡으로 울고 웃었다. 지하의 존재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바닥을 힘껏 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