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에 대한 감정과 몰입도나 집중은 상황이나 장소가 아니라 자기자신이 정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 몇 명 없는 바에서 마시는 오렌지 주스가 날 취하게 만들 수 있듯이, 방에 누워 옆에는 불편한 듯 아닌 듯한 누군가를 둔 채로도 나는 마음 속의 오렌지 주스를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일관적이지 못한 사람이라는 건 대전제에 해당한다. 오늘 수십 마리의 고등어를 봤다. 하나는 식탁 위에서, 나머지는 수조 안에서. 무엇을 먼저 보았느냐고 물으면 식탁에서였다. 까맣게 탄 껍데기를 드러낸 채 나타난 그 녀석은 고슬고슬한 밥처럼 부드럽고, 잘 구운 삼겹살에 찍은 소금처럼 짭짤했다. 제대로 붙잡히지 않는 뼈를 바르면서도 그것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어째서 그 고등어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마 연약한 단백질이었을 그것은 불판 위에서 까맣게 타고 만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떠올린 건 생선 비린내를 못다 참고 바람을 쐬러 나왔을 적이었다.
그때 수조를 봤다. 우럭 두 마리, 고등어 열여섯 마리. 글로 써야겠다고 마음이 든 이후 여덟 장 찍은 사진을 돌려가며 세어본 결과였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는 한 마리당 하나의 영정사진도 찍어주지 못한 것이다.
매운탕의 우럭은 국자에 그렇게 쉽게 부스러지던데, 네 지느러미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구나. 꾹 눌러 떼어낼 수 있는 머리가 애처롭게 보였다.
고등어의 등에는 줄무늬가 있다. 검은색과 은색의, 얼핏 봐서는 모르고 자세히 보면 얼룩말이 생각나는 생김새로 열여섯 마리가 줄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식탁 위에선 볼 수 없는 줄무늬였다. 그 속살은 어떻게 생겼을까, 뜨겁고 노랗고 하얀 줄무늬를 지니고 있는 걸까. 아니라면 내가 볼 수 없는 모습의 것일까. 조금 더, 고개보단 정신을 밀어넣는다는 말이 어울리게 살피다 보면 연하고 투명한 은색에 몸통 부분은 조금 검게 변한 지느러미가 양 쪽에 달려 있다.
젓가락으로 건드리면 파스락 하고 부서지고 마는 그것은 자신이 여기에 있다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반으로 갈라진 채로 펼쳐진 모습이었구나. 익어버린 모습이라 눈에 익지 않았던 걸까, 나는 너를 얼마나 아는 걸까, 내가 본 고등어는 다른 존재가 아닐까.
노릇노릇하게 익어 김이 나던 녀석이 이 수조 출신인지는 아무도 모를 거다. 이것을 요리했던 누군가에게 묻는다면 혹여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혹은 그녀는 이미 내 세상에서 벗어났다. 맛있고 기름졌던 그 녀석의 출신성분이나 사진같은 건 챙겨주지 않았다.
어쩌면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나는 물고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먹지 못해서인 걸까, 몸으로 품을 수 없어서 마음으로 품고 싶은 욕망의 발현일까.
수조의 물비린내를 맡고 목이 찢어져라 헛구역질을 했다.
미안해요. 이 글도 클릭은 했는데 안 읽어요..몇 줄 읽으면서 벌써 질리네요. 이런 식의 알지도 못하는 글 천지라.
이제 여기도 떠날 때가 된 거죠.
도대체 이런 이상한 글들이 무슨 의미죠? 아무래도 저는 문학에 소질이 없는 듯요
이딴 거 보지말고 명작을 읽어
좋은 글 세상에 차고 넘치는데
조까라 마이씽은 약간의 퇴폐미가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죽은 자에겐 동족이고 뭐고 없다지만 친구는 가능할지도
하지만 또, 친구가 몇이냐고 물을 때 죽은 친구까지 세지는 않는다는 뜻이면 맞는 방향이라고 하던데.. 말은 멋있는 것 같아요. 그쵸 ?
난 괜찮게 읽엇는디 - dc App
잘 좀 써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