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감 재봉이 뜯어진 깔깔이를 입고 나선 산책길.
주머니에는 기침약과 지갑, 구겨진 영수증이 뒤섞여 부스럭거린다.
전주는 후백제의 도시라고 했나 ? 견훤로는 아마 그 왕의 이름에서 따왔겠지.
목적지는 없다.
왕의 행찻길이오 ㅡ 외치며 눈 속을 걷는다.
불안했다.
뭐가 그렇게 불안했는지를 따져보자면 별 것 없지만 그럼에도 여즉 불안하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 뛰는 심장처럼 비슷하게 맥동하는 건 아닐지.
처음 몇 일간을, 그리고 떠날 때까지 찾아가 계속해서 얘기했던 그는 이제 한국에 없다.
그 앞길에 축복이 깃들기를.
기묘한 경험이었다.
경험이란 것이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꿔버릴 정도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을 맛본 것일지도.
허들 달리기를 하듯 방전된 나를 뛰어넘고 남을 위해 움직이다니,
진실로 이르노니 꽤 괜찮았노라.
슬픔에는 이유가 없다.
사실 이유라고는, 있겠지만 그걸 하나하나 갖다 붙히는 건 너절한 꼬라지.
슬퍼하고 있었기에 슬프고 슬플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슬픈 것은 이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자유로워지고 싶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본 적이 없었기에 관성이 센 슬픔에 밀려버리는 것.
이 사실이 슬프다고 쓰기는 하다만 사실 그 이유라는 것들도 너저분하다.
그저 브레이크 대신 내 의지를 써야하는, 이 차량이 너무 빠르게 달리고 있을 뿐이다.
확신없는 길을 걷는 것의 문제는 당최 내키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 해보리다ㅡ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찬가의 저릿저릿함이겠지만 내가 하려니 영 ..
그럼에도 해보리다.
이후 나를 노래할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요.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고 바랬던 내 글들이 너무나도 확신에 차 있어서 그런 것이요.
희망을 바라던 그 마음이 끈적한 숙취처럼 머릿속 가득 웅웅거리기 때문이라오.
만약 내가 변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겁니까 ?
정말이지 무의미하다고 한탄해왔지만 이제는 그럼에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겪은 것들은, 써온 것들은, 행동해온 것들은
이제 아무런 몫도 떼어받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겠군요.
변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나는 차라리 이대로 남겠습니다.
이제와서 필요없다 떼어 버리기엔 그는 너무도 나와 닮아있습니다.
누구보다 그를 이해하기에 도저히 그렇게 역겹게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구역질이 나는군요.
희망은 어떤 것일까요 ?
비싸다는 고급 와인을 음미하듯, 입 안에서 굴려봅니다.
미래나 꿈같은 단어는 심심합니다.
듣기만해도 끔찍하게 지루해서 귀를 뜯어버리고 싶은 느낌이라고 해야할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에 비하면 희망이라는 것은 어떻게 다뤄야 좋을지 잘 모르겠네요.
보고있자면 한겨울 눈 내리는 밖을 뛰어다니다 돌아온 어린아이처럼 열기가 피어오릅니다.
빨갛게 달아오른 볼은 심장이 뿜어내는 젊음의 상징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어떤 것일지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미 실패해버렸으니까요.
생각을 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습관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으니까요.
가끔은 편안한 삶이란 것을 상상해봅니다.
그것은 어쩌면 경사면을 벗어나 평지에 올라서는 일이 아닐까요 ?
단지 항상 어디론가 굴러 흐르던 바퀴를 제자리에 머무르게 하는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
막상 그렇대도 분명 불안함에 다른 경사를 찾아갈 것이 분명하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삶이라 희망을 품기에 충분하다면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잘 따라하지 못한대도 같이 웃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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