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
그래요. 나는 흘러가는 루틴 속에 있어요.
내가 만든 루틴이예요.
그 루틴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잊을 만큼 이제 그 루틴은 공기와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이빨도 닦기 전에 발효종을 덜어내요.
그러다 잠이 깨면 방안 청소를 시작하죠.
반죽을 하나 다 만들고 나면 통에 재워줘요.
재운 반죽은 30분마다 깨워줘야 해요. 발효를 돕는 일이죠.
그 단계마다 이름도 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죠.
그런 일의 중간에 어제 냉장고에 넣었던 반죽을 꺼내요.
12시간이 넘게 천천히 발효를 시킨 일이지만, 나는 그저 넣어 놨을 뿐이죠.
냉장고에서 꺼낸 발효된 반죽을 오븐에 넣어요.
못해도 24시간이 지난 반죽이지만, 그것도 상관없어요.
루틴이란 지금 할 일만 있을 뿐이예요.
반죽을 시작할 때도 그건 오늘의 일이었을 뿐이죠.
마치 오늘의 반죽을 다시 냉장고에 넣어 놓는 것처럼.
그럼 아마도 별 일이 없다면,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처럼 냉장고에서 반죽을 꺼내겠죠.
그렇게 반죽을 냉장고에 넣고, 오븐에서 꺼내고 나면,
하루 종일 먹을 빵 하나와 내일 할 일이 또 하나가 생겨요.
빵은 다 먹진 못해서 늘 조금씩 쌓여요.
지금 빵 광주리에는 빵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요.
나는 그 빵들을 만들지 않았고, 그렇게 쌓아 놓을 생각도 없었어요.
나에겐 빵을 만드는 것보다, 아침에 일어나 해야 할 일들이 중요해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늘 광주리엔 빵이 쌓여 있고, 나는 그 빵을 먹고 또 루틴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 모든 일들이 끝나면
나는 시를 한 편 쓰고,
그리고 게임을 하고,
사람들과 온라인에서 얘기를 나누고,
밤이 되면 잠 잘 생각을 하고,
내일 일어났을 땐 조금 덜 추웠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죠.
산다는 건 아무래도 좋아요.
죽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루틴 위에 올려 놓고
나 자신도 올려 놓고
나는 세상도 잊고,
무엇보다 나도 잊고...
나는 빵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https://oldpens.co.kr/main/script.html?id=6ddeb995-cd7f-11ef-84b7-0242ac110003

방랑자 그래요. 나는 흘러가는 루틴 속에 있어요. 내가 만든 루틴이예요. 그 루틴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잊을 만큼 이제 그 루틴은 공기와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이빨도 닦기 전에 발효종을 덜어내요. 그러다 잠이 깨면 방안 청소를 시작하죠. 반죽을 하나 다 만들고 나면 통에 재워줘요. 재운 반죽은 30분마다 깨워줘야 해요. 발효를 돕는 일이죠. 그 단계마다 이름도 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죠. 그런 일의 중간에 어제 냉장고에 넣었던 반죽을 꺼내요. 12시간이 넘게 천천히 발효를 시킨 일이지만, 나는 그저 넣어 놨을 뿐이죠. 냉장고에서 꺼낸 발효된 반죽을 오븐에 넣어요. 못해도 24시간이 지난 반죽이지만, 그것도 상관없어요. 루틴이란 지금 할 일만 있을 뿐이예요. 반죽을 시작할 때도 그건 오늘의 일이었을 뿐이죠. 마치 오늘의 반죽을 다시 냉장고에 넣어 놓는 것처럼. 그럼 아마도 별 일이 없다면,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처럼 냉장고에서 반죽을 꺼내겠죠. 그렇게 반죽을 냉장고에 넣고, 오븐에서 꺼내고 나면, 하루 종일 먹을 빵 하나와 내일 할 일이 또 하나가 생겨요. 빵은 다 먹진 못해서 늘 조금씩 쌓여요. 지금 빵 광주리에는 빵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요. 나는 그 빵들을 만들지 않았고, 그렇게 쌓아 놓을 생각도 없었어요. 나에겐 빵을 만드는 것보다, 아침에 일어나 해야 할 일들이 중요해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늘 광주리엔 빵이 쌓여 있고, 나는 그 빵을 먹고 또 루틴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 모든 일들이 끝나면 나는 시를 한 편 쓰고, 그리고 게임을 하고, 사람들과 온라인에서 얘기를 나누고, 밤이 되면 잠 잘 생각을 하고, 내일 일어났을 땐 조금 덜 추웠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죠. 산다는 건 아무래도 좋아요. 죽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루틴 위에 올려 놓고 나 자신도 올려 놓고 나는 세상도 잊고, 무엇보다 나도 잊고... 나는 빵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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