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도 아니며 나인 것을.
대신 지탱하던 그 무엇도 아니며 그도 아닌,
그러나 그가, 나에게 오고 있고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인사를 하는
재빠른 것, 적확한 것이거나, 휙 돌아섰거나, 인용한 것이거나
보다 더 빠른 걸음 같은 것,
걸음새 뒤에서 마주 봄 같은
흩어지는 저 하나가 나의 그 하나이던가,
쪽빛 같은 걸음이 한대로 뭉친 오후이거나
낯과 놀의 반지름이 구九를 떼어가던가 하는
광인이 의자를 타고 올라 전구를 갈던가,
전구를 갈고 내려오며 의자를 치우는, 그 순간에
조명이 깜빡, 깜빡, 그리고 어지러 진 집안이 일렬(一列)로 보이는 듯한
목마른 물빛이, 물을 채운 잔이 깜빡 깜빡 테이블에 있고
한순간 잔에 물이 미끄러지며 일그러지는 어떤 갈구함이라던가.
허공중에 손을 뻗으며 기시감으로 가득 찬 기이라던가.
물 잔을 잡은 손에 미량의 물이 스미며,
그도 아닌, 나도 아닌, 그런 깜빡임 속에
무언가 속에 가득 찼다며,
재빠르게 벗어나는 모든 경우,
내가 나인 무수히 번진 그 경우를,
환희에 깜박임에 속아 재빠르게 다른 결구의 문장을 지어내던가,
그 경우를 선택하는 의논에 갇혀있던가,
어떤 무수한 걸음과 무수한 나였을 확률이 만나는
들과 불과 작은 잔을 들며 서 있는 한 사람의
뒤에서 커지는 그림자가 불에 가닿는,
암흑이거나 어떠한 놀람을 대신하는 공간의 떨림이거나 할 수 있는
불이 지금 들어왔다고 놀라는 경우輕愚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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