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을 꽃다발처럼 엮어 걸어가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헝클어진 머리와 함께 초췌한 안색을 띤 그 사람의 눈에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습니다. 어쩌면 항상 아래에 깔린 땅만을 보고 걷는 사람인지라 그림자가 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그가, 잠깐 고개를 들어 마주하게 된 것은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비친 생기 없는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아득히 어두운 스크린 도어 속 비친 나의 모습은 흡사 밤하늘에 누워있는 행색이기도 하지만 주변에 별 하나 빛나지 않습니다. 역 내는 지하에 위치하여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대신 그 역할은 값싼 형광등이 대체합니다. 그러나 그 빛은 결국 가짜라고도 볼 수 있기에 이 곳은 그늘진 곳입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우면서도 무겁습니다. 역 바깥으로 올라오게 되면 밝은 햇빛이 시야를 흐리게 만듭니다. 이를 피해서 나는 또 그늘 밑으로 걸어갑니다. 그렇게 10분 정도 그늘 밑을 걸으면 좁고 낡은 골목길이 나타납니다. 이 골목길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보금자리가 존재하는 장소입니다. 내가 생활하는 곳은 골목길 끝에 위치한 초라한 주택으로, 옆 아파트 단지에 해가 가려 햇빛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이 역시도 그늘입니다. 그 아무도 나에게 왜 그늘로만 다니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마치 그러한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 사람들의 태도가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 나에게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 아닌, 스스로가 그림자가 되어버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태양 아래로 발을 내딛기가 어렵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면 어둑하지만 아늑한, 전적으로 나만의 공간이자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납니다. 햇빛도, 사람도 찾아오지 않는 집이지만 그러하여 바깥의 상처나 고통 같은 것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나는 이렇게 약간은 쓸쓸하지만 편안한 공간에서 눈을 붙입니다. 그렇게 잠깐 눈을 붙이고 나면 꽤 상쾌한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이 기분은 오래가지 않고 곧 사라져 다시 외로움과 우울함이 문을 두드립니다. 항상 반복되는 비슷한 루틴의 일상은 점점 더 지루해지고 나의 정신은 친구의 존재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문을 두드리는 저것들은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친구라고 부를 수는 없을뿐더러 오히려 나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므로 빨리 떨쳐내야 할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 일상에 약간의 변화를 주려고 결심했습니다.
나의 집 근처에는 꽤 규모가 있는 공원이 하나 있습니다. 저수지를 중심으로 산책로와 정원이 넓게 둘러싼 형태의 공원입니다. 나는 오늘 이 곳에 갈 예정입니다. 우울 대신 진짜 꽃으로 꽃다발을 엮어 걸어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태양 밑으로 당당히 걸어가 내가 그림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가장 아끼는 보라색 겉옷을 꺼내들어 걸친 후 다시 집 밖을 나섭니다. 어두컴컴한 집에서 걸어나온 나에겐 햇빛이 너무나도 눈이 부셔 눈을 제대로 뜨고 앞을 보기가 힘듭니다. 이것이 태양의 위력인가 하고 눈물이 맺힙니다. 그렇게 나는 슬프지는 않지만 눈에 눈물을 괴고 걸어가는 이상한 형색을 하고서 공원으로 걸어갑니다. 조금만 걷다보면 금방 공원에 도착하게 됩니다. 공원의 넓은 정원으로 들어서니 연보랏빛 꽃들이 바람에 맞추어 산들산들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꽃의 이름은 알리움 입니다. 나는 그만 바람과 함께 합을 맞춰 춤을 추던 알리움과 눈이 마주쳐버렸습니다. 다리의 힘이 풀려 바닥에 볼품없이 털썩 주저 앉은 채로 엉엉 소리 내어 울게 되었습니다. 마치 내가 한 송이의 알리움이 된 것 같습니다. 주변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이런 나 자신이 너무 싫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어져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릅니다. 그저 둥글고 커다란 알리움이 나를 찾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습니다. 주위를 살펴보지 않고 달려 도착한 곳은 높은 담장으로 막혀있는 막다른 길입니다. 담쟁이덩굴이 저 담장 높은 곳까지 덮고 있어서 이상한 경외심이 드는 장소로, 경외에 짓눌려 눈물이 그칩니다. 자연스레 담장 꼭대기에서 아래로 시선을 돌려보니 그늘진 곳에 작은 아이가 쭈그려 앉아있습니다. 아이의 눈에서 반짝이는 비구슬이 뚝뚝 떨어집니다. 나는 울었고 아이는 울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아이의 눈높이로 내려가 말을 걸게 되었습니다. 왜 울고 있느냐고. 왜 혼자서 울고 있느냐고.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 어린 눈으로 나를 응시합니다. 어리고 순수한 눈이지만 그 깊은 곳에서 우울이 느껴지기에 두렵습니다. 그 눈길이 대답을 대신합니다. 어딘가 그 눈길이 익숙하여 내포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성마른 말이 너를 아프게 하는구나. 누군가의 섣부른 생각이 너를 슬프게 하는구나. 비록 이 곳은 막다른 길이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조언을 감히 해봅니다. 갇혔다고, 닫혔다고 생각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보라고, 너를 품어주는 것들 속으로 걸어들어가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너무나도 작고 여렸기에 이 말들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이 생각은 아이의 눈을 통해 쓸모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눈은 내가 봤던 그 어떤 사람보다 강인하고 의지가 굳건한 눈입니다. 나는 그나마 마음이 놓여, 어른 된 도리로서 아이에게 웃음을 지어보입니다. 아이도 이내 울음을 멈추고선 나를 보고 빙긋 미소를 짓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등 뒤에서, 감춰져있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하얀색 데이지를 나에게 건네주고서는 담장 밖으로 달려나갑니다. 산으로 들으로, 강으로 바다로 달려가듯이 힘차게 달리던 아이는 금방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나는 내 손에 들린 하얀색 데이지를 바라보며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을 느낍니다만, 결코 부정적인 감정은 아님을 장담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이가 뛰어갔던 방향을 바라보며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새에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벌어졌기에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전부 지쳐버려 무언가를 더 할 수 있는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하얀색 데이지를 손에 들고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제는 알리움을 보아도 눈물을 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떨어지지 않을까 하여 손에 꽃을 꼭 쥐고 알리움 들판을 지나갑니다. 이번에는 나무 그늘 밑을 통해 집으로 가지 않습니다. 나는 태양 밑으로 걸어갑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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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평범한 하루가 시작됩니다. 언제와 같이 나는 어두침침한 지하철 역 안에서 캄캄한 스크린 도어 속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하얀색 데이지를 가방에 달고 다닙니다. 이상하게도 그 꽃은 며칠이 지나도 시들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스크린 도어 속 존재는 여전히 나약하지만 강인한 존재입니다. 나는 천천히 스크린 도어 속 또 다른 나를 살펴봅니다. 옷가지부터 체형, 자세, 안색 모두 과거와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곧 누군가를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스크린 도어 속 존재의 눈이, 그 누구보다도 강인하고 굳건한 의지를 가진 눈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모습과 그 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나는 하얀색 데이지를 꽃다발로 엮어 걸어가는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울고 있는 사람 - 이제니 를 글로써 재창작 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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