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않으니 몸이 빈다. 그러고 보니 언어의 획과 굴종에 최선을 행했다 하면 몸은 괄략한 [ ] 이 중간이 된다. 실컷 말해버렸으니 언어에 몸이 찬 것이다. 언어가 몸 밖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그러면 몸은 침묵을 가르킨다. 그리고 다시 말하고 타자가 바뀐다. 가만 보니 그냥 이것 저것 하면서도 글을 쓰는 시간에는 막상 점입가경이다. 할 말이 없는 데에 키보드에 손을 얹으면 말이 나온다. 할 말이 없다는 것은 비약과 같고 그러한 비약은 몸을 뒤숭숭하게 혹은 깔끔하게 만들지만, 그 자체로 오용과 동시에 오만이 될 수도 있다. 그리하면 나는 내가 알거나, 가 닿기 힘들거나 한 무아, 진리,대타자 이런 언어를 생각한다. 곧 어려운 언어가 세간 살이이다. 알기는 알지만 잘 모르는 것들 점입가경 했지만 누수히 몸이 받들여지지 않는 것들, 그 점입가경이 부끄럽거나 다시 그 지점으로 가라고 한다 한들, 나는 꽤 명랑하고 번번히 실패한다. 잘 쓰인 글을 읽어야 겠다는 다짐 속 한 편에는 뭔가 부끄러운 마음도 올라오고, 어떤 평문적인 글을 보고 평이하게 지나치면 나는 다시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그런 자각 속에서 도道 아닌 것이 없고, 부끄러움에 노출이 된다는 것이 나를 명랑하게 만든다. 썩, 꽤나 나는 명랑한 사람은 아니지만 말이다. 역설적인 구조이다. 말을 조심히 하게 된다. 말을 삼가게 된다. 그런데 웃긴 것이 말을 삼가니까 생각이 또 문제다. 생각이 문제다 보니 무의식이 문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이제 명랑한 것이거나, 깊은 것이 된다. 요즘 사람들은 시를 잘 쓴다. 시력이 깃든다는 표현 보다는 사력이 깃든다고 보아야 겠다. 분명히 나는 할 말이 없는데 라는 의식 속에 있으면서도 말을 하게 된다. 말이라는 것을 앓다가 보면 말이라는 도구가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하하, 아마 지금은 이러한 시대인 것 같다. 아마 나는 그렇다. 나는 그런 시대에 있다. 아마 경중을 알리는 것은 나 자신自身이 된 시대, 자신이라는 말이 부끄럽기도 하고, 자신에 찬다는 것이 무섭기도 한데, 말이 쌓이기 보다는 말이 흘러가고, 흘러간 말에 나 자신自身이 뗏목을 타 흐르는 듯한 기분이다. 그러나 인생살이 노는 없다. 그저 흐르는 대로, 부닥치는 대로, 노가 있으나 없는 듯한 기분, 있다고 하여도 없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자신自身이라는 말과 글간에, 어딘가 부서진 뗏목과 함께, 말의 업화를 지면서도 전진살이 하는, 인생 아니겠는가, 요즘에 나는 현실 이라는 말을 읊적여 본다. 현실이라는 말이 몸에 번져서, 읊져서,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이런 수용성이 인생 그자체 인 것 같다. 즉자면서 대자이고, 대자면서 일자인 것, 그런데 이런 부끄러움을 다 벗고 나면, 벗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나면, 옮겨진 타자는 현실 세계, 본능, 합리 속에서 다시 수용성을 가지게 된다. 일체면서 흩어지는, 흩어지면서 일체인 것 같고, 이런 감각이 이렇게 말하는 듯이 한다. 감각은 켜져 있으나, 5취온을 벗어 던지라고, 그리고 옮겨 가는 화자인 동시에 화자인, 온과 5온과 5취온이, 내 몸에 있고, 다닦들여지는 것 같은, 마치 [ ] 이러한 상태인 것 같은데, 적다 보니 글이 꽤 어려워졌다. 허허실실 가닥이 보인다. 다시 되 돌아와서, 무언가를 옮기는 것에서 돌아와서, 생이란 무엇인지 가늠해 본다. 생生이란 생生이며 생생生生이다. 라고 하는 것 같다. 자신自身에서 자自 없고 자신自身에서 신身없고, 신발을 신고 밖으로 외출하거나 들어가는 듯한, 먹먹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렴 우려한 일들 많으나 순간적인 고요가 꽤 소중하게 느껴지는 나날이다. 소중한 고요, 고요 이후의 생. 아마도 도 닦는듯이, 도돌이표하는 듯이, 온점은 찍었으나 마땅하지 않은, 그리고 라캉에 대해서도 찾아보았는데, 내가 한 생각과 물성이 다를 뿐, 표면적으로는 같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같다는 것이, 전력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생산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글이란, 선생이란, 정답을 알려주면서도, 다른 정답을 찾아내야만 할 것 같다. 아마 글을 읽으면 아하하ㅡ 좋다, 거나 맞는 말!이다, 하 거나, 할텐데ㅡ, 그런 자가당착은, 역시ㅡ 누군가의 말처럼, 비약적이거나ㅡ, 합리를 쫓는ㅡ 독서에 관해, 경계하게 된다, 그러나 경쾌한 물음이라는 것은 사실ㅡ, 알고자하는 이윤은 사실ㅡ, 아주 작거나 한 것일지도 모른다ㅡ... 아주 작거나 지나치게 사소한 것일지 모른다, 즉자 대자 일자가 존재하면, 즉자 대자 일자를 잠재워야 한다ㅡ. 그런 경쾌함 속에서ㅡ 삶의 리듬이 울린다ㅡ. 나는 즉자 대자 일자를, 온과 5온과 5취온을, 무아, 진리, 대타자라는 것을 정확하게 잘 모른다. 예전에 검색한 적이 있으나 까먹었다. 그러나 심정 속에는 남아있는 것, 일종의 리듬이 더듬이 같은 멜로디가

노래 가삿말 소리가ㅡ하하, 잘 모른다고 하여도 어떠한가, 글을 잘 못쓴다고 하여도 어떠한가, 그저 살아있음으로 감내하고, 감내하므로 살아있는것을. 


하하 ㅡ! 


이런 것이다.


이것은 나힐리즘 적이다, 니체적이네요, 프로이트적인가요? [존재가 살고 인정 받는 이유이죠, 추진력이기도 한 힘] 하는 문장이 생기는가 동시에, 자연적인 문장이 소실된다.*

그러나 색 다른 것, 포엣, 온리, 누벨바그. *** 같은 것들. 

새로운 물결, 찾아야 한다*

그러나 내가 쓴 것이 저것과 같고 저것이 내가 쓴 것과 같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지표'가 생길 때 '기의'나 '기표'가 생길 때, 저 것과 이 것이 내가 생각한것과는 다를때, 새로운 지표, 기의, 기표가 생기죠.


생각의 만물장이 원고지 문고 같을때,

기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원고지] [기입]이란 것도


세상살이이다. 세상살이 안에 있다. ******

세상살이 안에 있다, 세상살이 안에 무엇이든지 있다.

없는 것이 없다. 세상살이 안에, 생각을 하더라도 무엇이든지 있다.

이게 오늘의 깨달음입니다.


참 천부덕스럽지요? 응상맞지요?

오늘의 작은 깨달음이 풍족하게 합니다 


백화점에 파는 물건을 내가 사지 못하더라도,

 저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필요하지 않고,

필요한 것들은 내가 찾아서 쓰니까,

부족함이 없고,


:하지만 삶이 그렇게 쉽게 풀어 헤쳐지는 것은 아니니까,

모험도 있고, 삶이 재미도 있고, 어렵고, 하지요.


그러니까 삶은 애시당초 쉬운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것이지요

어려워서 더 멀게만 느껴지는 어떤 것이지요,


지금에서야 아미타불, 아멘, 할 수 있겠네요, 좋은 의미로! ^^%%


그러나 어린이 신자 같은 경우는,

아미타불, 아멘이 뭐에요 할 수 잇지요.


나도 예전에 그러했으니

돌아갈 수 있는 무엇이 내게 있는 것일지도요


만물장이 있습니다,

지금, 만물장을 어떻게 벗어납니까?

'어린이어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웃기지요?

시나 적지,

왠 글을 저리 길게,

하하ㅡ


너가 땡중이냐, 신자냐,

무슨 글을 그렇게 써?


웃기지요,

하하ㅡ

세상살이.


아니면 시인의 시를 읽었다고,

온전히 내가 될 수 없겠죠?

그러므로 자신自身인 것을 말이죠,

하하ㅡ


저가 어린이가 될 수는 없겠죠

그런데 어린이가 분명히 저에게도 있죠

필요한 어린이가 있죠


말이 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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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가장 간단하게,

말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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