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수,
눈을 시퍼렇게 뜬 천 면의 얼굴.

천 개의 비명,
그리고 희멀건 얼음막.

기어코 너 이 호수를 건너겠느냐 

고요한 호수, 정적

시베리아의 혹한에도 
따스한 사람들은 분명히 있겠지.

걸음이 멈추던 찰나,
호수 아래 얼굴들이 요동친다.

경고음, 뜀박질,
깊은 투명들에 균열이 지는 감각.

일만 개의 손가락
호수 아래 두들기는 소리

새파란 얼굴과 
거칠게 뛰는 심장,

차디찬 얼굴과 
의식과 육신의 유리된 사이,
나는 얼굴조차 될 수 없구나. 

그래,

나는 서리였다. 
나는 눈안개였다. 

나는 병원이었다.
나는 환자였다, 

나는 이미 중독자 였다. 
아니, 나는 시체였다. 

나는 도망치고 있구나.
나는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나는 결코 포옹받지 못할 테다. 

그리하여,

나의 죽어진 공간에,

나의 죽어진 들판도, 
나의 죽어진 하늘도,
나의 죽어진 도시도, 
나의 죽어진 해변도, 
나의 죽어진 심해도, 
나의 죽어진 허공도, 
나의 죽어진 허무도, 

나의 흐르던 강도, 
나의 범람하던 바다도, 

그 마지막 도피처 마저도
일차원의 회색 공간이 되어,

잠긴 망막 너머로 
수면 위를 바라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