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는 목소리가 내 목소리가 아니다
글을 읽는 목소리는 누구의 목소리일까?
진정의 목소리, 이전 발화의 목소리 글을 읽으면 혀가 같이 튕 군다
글을 읽는 목소리는 어디서 형성이 될까?
참 신기할 노릇이다.
지피티와의 대화
의미의 귀신이라는 표현이 참 좋다. 결국은 글을 읽는 목소리는 내 목소리이자 뼈와 구조의 울림이 없는 목소리의 진체라는 것 같애. 책을 읽다가 보면 읽는 행위에 있어서 목소리에 움직이지 않은 혀 울림에 호흡도 있고! 그래서 글을 읽다가 보면 호기 행위를 하고! 이걸 감각의 양쟈화로 본다면 감각의 죽척이 된 내 목소리로 들리지 않는 글도 있는 것인데 무의식적 표면으로 보아도 되나 ...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생각하면, 내 몸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깃들고, 참 신기한 것 같애 . . .
그래서 타자의 목소리는 내 안에 맺히었다가 그리워 지는 재주가 있는 것 같으다, 내 목소리와 섞인 타자화의 목소리 . .~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생각하면 두 파동이 서로 어울려 아우러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지네 .
깃들다, 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ㅡ? 완벽하게 재현이 불가능한 타자의 목소리, 그 이능적인 것 . .
그래서 목소리에, 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나 외에 맺혀있는 것,
사평역에서 곽재구 시인의 시처럼 그리운 목소리를 호명해본다 목소리에도 사람이 깃드니 마음은 더할련지 . .
이런 목소리에 호흡길이 더해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
이것 참, 환청 있을 당시엔 재주라면 재주인 것인데 - -. .
비울 때가 되면 비우게 된다 오줌처럼.
먹을 때가 되면 먹게 되고
쌀 때가 되면 똥처럼 싸게 된다.
마실 때가 되면 마시며,
비울 때가 되면 비운다
그러나 이 한가지를 하지 않았을 때에도.
비울 때가 되면 비우고
먹을 때가 되면 먹는다.
마실 때 마시며
비울 때가 되면 비운다.
똥오줌변,
변변찮지 않아도,
이러한 의식은 계속 된다.
비울때 비우고
먹을때 먹는것,
한 편으로는 이와 같은 일들이 부당하거나 불행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그거 아니면 할 것이 없는 것이 인생이란 모름지기이다.
비울때 비우고,
먹을때 먹는것,
먹을때 먹어서,
비울때 비우는 것.
삶의 터전이 똥오줌변에 다 들어 있다.
진공,관념 에 목소리가 뒤이듯이,
관념,진공에 사유가 드나들듯이,
진공,관념에 외롱불이 켜지듯이,
관념,진공에 외롱불을 지워내듯이,
진공, 관념에 무수한 씨락사기들,
관념, 진공에 무수한 씨락눈들...
삶의 터전도 이와 같다.
먹는다는 것은 비운다는 것이고
비운다는 것은 먹는다는 것이다.
진공,관념은 한다는 것이고
관념,진공은 한다는 이후의 것이다.
진공,관념은 하기 전의 일이며
관념, 진공은 한 후에 일이다.
산다는 것이 그렇다.
산다는 것이 때때로 그렇다.
마음 속에 이미 외롱불이 있어
외롱불이 이미 마음 속에 있고,
무의식적 사유의 잔광들,
불 켜진 전등에 날파리 떼들 모이는 것처럼
마음이 마음에서 사유하고
외롱불이 외롱불에서 사유하고,
헌데 모아서...
거미가 있을 장소엔 거미가 있고
개미가 있을 장소엔 개미가 있는 것...
개구리들 논에 모여 부럭부럭 물어대고,
잔광에 벌레떼들 섥히고,
철새들도 밤이 와 잠을 자듯이
마음의 나침표가 새들에게 있어 철새가 되고,
낮이 오면 저절로 일어나는 것,
마음에 이미 씀씀이가 다 있어
졸리게 되면 잠을 자게 되고
억측의 불면의 밤을 지새워 결국은 자게 되는 것...
율동이란 그 사이,
사이, 사이,에 잔광하는 빛 같은 것
개구리에겐 부력이 있고...
넙치는 아랫만 쓸어서...
어쩌다 두꺼비는 그 중간이며,
나도 또 어쩌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
의미가 갈변하는 그 머시기에...
나는 불편함을 느끼덩가 ...
의미와 존재의 미학...
나는 왜 이러한 글을 쓰고 있는가
비우면 비우고 채우면 채우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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