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날

돌무지 언덕을 넘나드는 어릿광대

돌멩이를 차고 뭐가 재밌는지 씩씩 웃고

잰잰 걸음을 치는 푼수 같은 광대


어느 날

성당 입구의 텅빈 서늘한 그림자에서

조용히 멈춰 선 광대

별가사리 모자를 벗고 가슴에 겨누자

시원한 바람이

누군가의 손결처럼 밀려와

그의 땀에 젖은 머리를 쓰다듬는다

모자는 손에서 떨어져 수풀 아래로 날아가고


이제는

웃어넘기지 않아도 된다고

웃어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속삭임처럼


천사는

불안을 살피는 기대로

웃음을 넘어선 미소로


늘 그렇게

예감에 가득찬

따뜻한 침묵으로


언제나

성급하지 않은

넓은 마음 다정한 볼로


짓누르지 않는

여리여리한 손으로

건네는 수수한 말씨처럼

어린 여자의 상냥한 목소리처럼


천사가 걸으면 

돌덩이는 화단이 되고

구름이 흩어지고

날이 개고

빛난다


광대는 산 아래 마을에서 살던 시절

한 낮의 소란스런 선술집에서

일하던 그녀를 회상한다


문 입구의 서늘한 벽에서

고요히 붙어 선 그녀


그림자의 희미한 윤곽 사이에 나타난

미소

살짝 도톰해진 귀여운 볼

천사 같던 그녀


그와 접시를 치우던 그녀는

그의 손을 미소지으며 살며시 잡았다


그는 두려워서 그랬을까 

그녀를 자신없이 바라보며

연이어 손에 힘을 풀었다

그녀도 당황하고

슬퍼하고 말았다


광대는 부끄러워서 광대가 되었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부끄러워서

안돼 안돼 내가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미안해 미안해

그렇게 그렇게 피식 피식 웃는

푼수 같은 광대가 되었다


태생이 광대인 광대에게

어째서 신은 목도의 기회를 주었나

살며시 다가오는 순간 순간마다

어설프게 움직이는 광대에게

너무나 고맙게도 죄송스럽게도

천사와 맞이하는 순간을 선사해준

그여 


밤길을 혼자 걷는 언덕길은 불안하다

어스름 사이를 헤쳐나갈때

모든 허상이 벗겨진 순수한 생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것이

사람들은 두려워서

도시의 공허 위에 우스꽝스런 춤을 춘다

도망치고 사람들과 재잘된다


그래서

천사의 조용한 미소의 시간은

기적스러운 무엇이다


천사를 목격한 나는

공백을

거리를 두려워 하지 않는

편안한

대화처럼

존재처럼

그렇게 길을 걸어가기로 


천사의 시간은

알 수가 없고 붙잡을 수도 없지만


천사의 손을 만진 나는

천사의 시간 속에서

동경을 동경하고

다정을 다정하고

모든 시간을 품고 

풀어주고

다가가보려고

기도하며

걸어가보려고 


-아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 못잡는 나비

기억이란 꽃병 속에는 어찌 이리 신비로운가 

그녀 앞에서 아름답다는 말은 공허가 된다 

이 말도 상투가 된다

미다

위대한 시인이 아니라 미안하다 

못잡아서 또 피식 웃는다

절망의 해픈 제스추어

그 앞에서 항상 지는구나 

너무 성급해지지말자

고요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