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
by 임어지니
집이 무너졌다 미래를 무너트려서
미래는 오래전 알고 지낸 친구의 이름 같고 우리가 함께 골조 작업했던 주소지 같기도 하지
고층 아파트 올려다볼 때 그 끝에 노을이 매달려 있는 것은 일종의 착시 효과 사람들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고 한다
믿음이 없어도 무엇이든 믿을 수 있고
헤어진 당신이 죽은 사람이라 믿는 것은 더 잘 살아가기 위한 방식 혹은 살아남기 위한, 아무렴 내가 발굴해낸 생존 전략인 것이다
빈 의자 위로 이불 펼치면 미숙한 트라이앵글
그 아래 작은 아지트가 탄생하고 해 들지 않는 그곳에서 먹고자고 미래에 관해 생각하기로 한다 이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그런것을 생각하다 번뜩 무너지면 그건 의자가 넘어져서?
이불에 무언가 묻은 자국 가득해서?
단지 달아올라서 온몸이 붉게 가렵게
집먼지진드기 알레르기라고 했다
이게 제일 어려운 건데 침구를 자주 세탁하고 환기도 자주 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는 거네요 영구적인 치료 같은 건, 묻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 빨래방에 간다
지하에 위치한 빨래방은 이토록 좁은데 거대한 세탁기
거대한 건조기 여러 가구의 무수하고 거대한 생활들 돌아가고 있고
어쩐지 생활이란 건 미래의 잔흔 같아서
이삿짐 빠진 거실이거나 공사 터에 떠도는 먼지, 당신이 남겨두고 간 흔적들, 온몸에 피어오른 붉은 반점의 근원지 같기도 해서
세탁을 돌린다 다시 쌓아 올리는 마음으로
보송해진 기분이 돌면
매일 조금씩 지어지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모델하우스>
by 임어지니
집을 사기로 했다 살 것이다 좋은 집 넓은 집 깨끗한 집 브랜드 아파트 전망 좋은 신축의 철근 빼곡한 물 새지 않는 도배 잘된
집에 살 것이다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널 때 건너려고 신호 기다릴 때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에 그늘 보이지 않는다 행복도 기분도 자기 관리의 일부라는데 죄송합니다 나는 행복 간수도 잘 못 해서 아침형 인간 어렵고 행복형 인간 어렵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집이 마음을 만든다 높은 건물 높은 아파트 펜트하우스 긴 그림자 안전한 집 안전한 마음 낮아서 깊어서 안전하지 않아서 나 사실은 죽어 있어 그래서 살아 있었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때맞춰 배도 고프다 길고양이 울음소리를 베고 인부들 말소리 백색소음 삼아 잠자리에 들면 자주 온 몸이 간지럽고 약도 안 먹고 어떻게 살아 하고 묻는 친구 병원에 다닌다 약을 먹지 하고 나는 대답한다 슬픈건 뭘까 슬픈 표정으로 친구 슬퍼하며 물을 때
신발장 열면 알약 쏟아지고 이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집의 기분 집 안 가득한 기분 집에 산다면 저 집에 산다면 두어야지 모두 두고 가야지 따듯한 집 둘만의 셋만의 집 우리의 집 공공의 집을 사기 위해서 집에 살기 위해서 새 마음 새 뜻으로
<탐조 일지>
by 임어지니
1.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어
너는 삿포로에 간다고 했지
철새 도감과 습지
겨울은 길고 길지만 눈이 있어 견디는 설국
너는 소리만으로 새를 구분할 줄 알았는데
휴대전화 사용 금지, 잡담 금지
고요한 도서관은 고요하기만 하고
오늘은 도감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서 책장만 보다 집에 왔어
창밖에는 흔들리는 나무
비대한 비둘기와 나무 위 참새
새벽에는 이런 소리가 들리는 구나
태풍이 가까워진 것 같아
어제의 편지는 여기서 끝났다
2.
어제 본 새와; 오늘 본 새와 네가 좋아하는 새는 모두 다른 도시에서 태어났다
우리가 서로 다른 곳에서 왔으므로
유치원을 나오지 못해서
종이접기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
너는 도감을 읽고 나는 종이접기 책을 찾았지
야 그런 이야기보다는 추운 곳만 찾아다니는 새가 있고 더운 곳만 찾아다니는 새가 있다는 게 더 재밋다
두 다리 두 팔 닿지 않는 손
떠나온 곳이 있고 떠냐아 할 곳이 있는
새의 삶
3.
새들은 바람이 강하게 불 때 어떻게 나아가는가
가야 할 곳은 어디에 있는가
추적과 관찰 회귀와 고요 풍경이 펄럭인다
흐르는 것은 바람
이겨내지 않는 것이 할 일이라던 너의 이름
어떤 새 태풍에 휩쓸려 가는 사이 어떤 새가 울고 있다
어떤 새는 울음을 찾아 비행한다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견뎌가며 어딘가를 향해서
도감에 물이 새면 삿포로 상공에도 행렬이 펼쳐질까
4.
나는 새가 된다
갈 곳 없는 마음으로
잊히지 않는 이름과 횡단
어떤 네모는 둥글어서 시작점이 무수하고
어떤 옺머에는 마침이 없다
<모래성 게임>
by 임어지니
우리 중 누가 가장 잃은 게 많을까?
토론의 장이 열렸다. 아빠는 시작과 동시에 자신이 잃은 것들을 줄줄 읊었다. 대부분 돈에 관한 내용이었다. 금액으로 환산되는 비극이라니! 그것참 기쁜 일이구나 생각했다. 오빠도 무어라 이야기하기는 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대충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돈, 돈, 돈.....그런데 그거 다 네돈도 아니면서 뭐가 그리 억울하니 물을까 하다가 묻지 않았다. 눈가가 시뻘게서 묻기 좀 그랬다. 미안. 그런데 사실 속으로 백만 번도 넘게 생각했어.엄마는 그런 오빠를 보다 왜 무슨 일 있나. 도와줄까? 하고 물었고 "엄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무라자 자신은 잃은 게 없다고 답했지만 그런 엄마야말로 제일 많이 잃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아 아무래도 진부한 불행 같아 우리는 다시는 되찾지 못하는 것들을 겨룰 필요가 있었고 건강 면에서 엄마가 압도적이었다. 관중석에서 고모들은 "이건 우리 엄마지" 하다가도 "나는 왜? 아픈 데 없다" 엄마가 말하자 금세 조용해졌다. 그 다음으로는 잠재력. 발전 가능성 그런 거. 유력한 후보는 오빠와 나였는데 발전 가능성이라는 것이. 그래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아 언젠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하여 세 번째 라운드에서는 오빠가 선정되었다. 부당하다고 주장했으나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직 기대할 미래가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고학력자 잖아요. 일도 하고(알바인데요) 차도 있고(바꾸고 싶어요) 남은 친구들도 많고(그야....어쩌라고) 아무튼 덜 망해서. 이생망까지는 아니라고. 이후 몇 단계의 검증을 더 거쳐. 마침내 결국. 어쨋든. 기어코. 토론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아마 언젠가는 모두 공평하지 않다는 점에서 다행인 일이었으나 생각해보면 딱히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 아직은 그렇게까지 다 잃지는 않았나봐. 더 잃을게 많은가봐. 가진 게 많다. 나한테는 남아 있는 게 너무 많아서 나는 또 지키려고. 지속하려고. 이나마의 마음을 지켜내기 위해서 전력투구를 다. 하기로 했다.
<물그림자>
by 임어지니
드라이브스루 매장에서 햄버거 두 개를 주문했다
감자튀김은 치즈스틱으로 변경할게요 대신 감자스틱 감자스틱 버퍼링 걸린 것처럼 반복하는 나를 보며 친구가 웃었다
일회용 컵 물기를 따라 허벅지가 축축해졌을 때 우리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대신 질주와 음악 소리가 가득한 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고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전조등 없는 굉음
그 무렵 친구는 죽은 고양이의 울음소리 대변 냄새 사상유듀의 감촉을 떠올리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고 겨우 배가 고팠을 뿐 이었는데 그 밤에
도착한 곳은 인공 호수였다
물속 흔들리는 아파트 단지를 보며 친구가 빨대를 씹기 시작했을 때 파동에는 입주자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물속 깜빡이는 호수공원을 보며 친구가 빨대를 삼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음악을 틀었다 에스파는 나야 둘이 될 수 없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좁아진 빨대 틈으로 탄산이 역행했다
모두 끝났구나 모든 게 다 끝났어 우리 이제 배부르니까 가자
어두운 배경 속 배기 튜닝된 차량과 도로 위를 구르는 음악 소리를 거슬러
라이틀 레버가 움직이지 않았다
<만우절>
by 임어지니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공사장을 지나던 중이었다
우리는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물었을 때 초코맛 아이스크림 사 먹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겠지, 하고 너는 대답했고
하천 진입로 사이로 작은 포클레인 한 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로의 목소리보다 밀접한 소음을 들으며 지어지고 모너지고 보수되고 사라지는
우리의 미래도 저곳에 있을까 생각하고
그때 우리는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고르게 될까 고민하고
오후 한 시 물비늘이 보이지 않는 밖과 볕을 걸으며 그 모든 일이 과거과 되기를 기다리는 시간
그런데 벌써 여름이 왔네, 응, 그런줄도 몰랐는데, 포개진 그림자를 따라 흐르는 아이스크림의 끝에는 도색 중인 집들이 빼곡했고
고개 돌리면
"헬멧을 쓰지 않은 사람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
인부의 안내를 따라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동안 이 길이 끝나면 미래라는 것이 금방 올 것 같은 기분 아직 본 적 없는 너의 얼굴을 어쩐지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눈을 감아도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꿈을 꾼 적이 있다
- dc official App
본명임... - dc App
직방 후기 같기도 공구리랑 미장만 추가하면 집 짓는 시네
눈썰미 좋으시네 - dc App
양안다가 도대체 왜 심사위원? 씨팔 다들 인생 편하게만 사네 92년생이 무슨 문학을 알어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