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필름 이론 (Montage Onirique Theory) -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누군가가 내 꿈을 찍었을 때, 모든 장면마다 컷을 찍었고, 말할 수 없는 바깥에 필름은 내던져 졌다.
단 하나의 관객이 몽타주가 되어, 필름이 끊어진 곳에서, 또 다른 필름을 붙이기 위해, 나와 나는 섞였다.
저자와 판권이 뒤 틀리면서 단 하나의 독자가 만들어진 기이한 풍경, 반복되는 연속성을 해체할 때 논객論客들은 다른 입을 가졌다.
너의 두 손에 떨어진 사과는 인과 속에서 담론에서 담론으로 너에게 놓여진 부차적 산물이겠지만
여진(餘震)과 사족(蛇足)을 거친 인과(因果)에서 도출된 광휘(光輝)일 뿐이었다고 손을 내민다.
말이 아니려고 애쓰는 동안에 말할 수 없는 바깥이 되어가면서 단지 도출된 관념에 의하여,
우리는 손을 잡았고 손을 잡은 그 순간에 우리는 무수히 많은 해마가 되어가면서 영화를 보았는지 모른다.
바깥에서 바깥으로 충실히 밀려나온다는 이 느낌이 우리의 과부誇負였고 영화 속 논객들이 이룬 단 하나의 생生을 관통하는 엽서였을지 모른다.
우리가 꿈꾸며 누군가에게 말해갔을때 그것은 단층적인 이미지의 흐름에 불과해서,
누군가 나에게 말을 전해왔을때 귀 먹은 심청에 다름 없어서,
불모지不毛地의 탱화幀▽畫처럼 얼이 내비쳐서 우리를 바깥으로 밀어냈는지 모른다.
거센 물결 속의 해마海馬들이 새로운 물결의 스포트라이트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꿈이여, 날 생과 넋이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우리를 찍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대본을 바라보고 배열을 하며 책을 넘기는 동안 꿈은 끝나겠지만,
등장 인물도 없이 각본도 없이 단 하나의 독자도 없는 유랑流浪한 넋ㅡ
꿈ㅡ, 죽음을 무겁게 하기 위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초탈超脫적인 것ㅡ.
그 꿈에서 모두가 죽었고 너가 일어났을때 모두가 살아나는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인 것ㅡ,
해마가 한 번 휘청일 때, 새로운 물결, 누벨바그nouvelle vague.
벨이 울리고 자명종이 켜지고 두 눈이 커질 때 우리는 그 즉시 추방 당하는 것인지 모른다.
다중 자아가 사는 곳에서 우리의 의식이 켜진다. 그들이 나를 퇴장시켰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돌아가 누우며 그들을 그리고 하물며 제 자신을 우리라고 부르는 그 어떠한 통칭에 대한 것을 다시 바라본다.
꿈을 꾸며 영화를 보지만 깨어나는 그 즉시 엔딩 크레딧이 울린다.
몽필름 이론 (Montage Onirique Theory)  -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