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균
피범벅이 풍랑이 되어 돌아와서 좋았다
일대기에서 네군대에 귀퉁이에서 모두 찧고 돌아온 사람이 되어 있어서
몇군대의 장애를 수식으로 세며 벌어질 때가 좋았다
곰팡이처럼 살아있던 사람
사균이란 이름을 받지 못한 형식이어서
이름을 뒤집고 이름을 건내받은 기초에 다름 없고
병아리처럼 올라온 새살이 두 손에 덮힐 때면
큰 아지랑이처럼 덮이는 것이 한 없이 있어서
정제된 소금이 녹아 흐르는 것만큼이나
옅은 말을 골라 나누어 쥔 것이 쓰디 쓸 때
운문은 건내 받은 활어처럼 대문 앞에 있는 것
혹은 손금 속에 숨은 땀샘들
손 끝에 지문과 손바닥의 손금이 뒤집어진 허울이라면
내내 인생으로 돌아갈수는 없겠으나
이토록 엉망진창인 것,
천수가 꼬여 방랑벽을 가진 고양이가 새를 꿰듯
날아드는 것을 움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까지
알았던 것을 잡을 수 있다는 것
그런 형식의 모호한 사막을 지나서
피범벅이 풍랑이 되어 돌아와서 좋았다,
크고 작은 형식들이 군집을 함균으로 만들어 건내줄 수 없이 좋았다,
날개들이 낱개의 진열장에 걸려 있어 좋았다.
이에 응할 수 없는 몸짓만 있어서 좋았다.
크고 작은 기쁨이 여기에 있으면서
균일적이고 단란한 방랑벽 사이
네군대여서 좋았다.
닿아진 적 없는 최소가 최대가 되어갈 때
나를 이룰 수 있어 좋았다
글은 전혀 공감대가 없는 사람이 보았을때 조차도 한 점 혹은 한 단어라도 공감을 불러올때 생명력을 갖는 법. 추상적 단발적 단어의 조합으로 읽는 이를 저울질하는 거은 언어의 약속에 위배되는 것. 나홀로 보는 활자가 아니라면 보다 친절한 비ㅢ려를 ᆢ
저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해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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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