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하루 아르바이트 함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웃기겠지만 탈-존을 느끼려 했음 


설거지 아르바이트 

가게 진입 사람들과 만나고

세계-내-존재가 발생함

접시라는 언어가 밝혀지고 용도성이 생김

봄voir이 의미화되고 행동작용이 생김


따라서 무뇌로 8시간 동안 접시를 긁으면 됨

그게 내 설거지 세상 속에 

존재자의 밝혀짐이고

나는 고용인으로 인해서

노동세계에 들어오고 

루카치의 해석대로 나 자신이 고용주의 봄으로 인해서 또한 사물화가 되었음 그사람의 전체화 속에서 이것좀 치워주세요 라는 명령문을 따라가면 됨


하지만 난 그릇 긁으면서

탈-존의 시선을 계속 짐작하려 했음

세계-내-존재의 드러남 안에서

수세미로 그릇을 계속 돌리면서

탈-존을 동시에 보려도 했음

따라서 침묵을 유지했고


그런 시도를 했는데 

동업자가 말걸음

군대 다녀 왔냐

몇살이냐

이름 뭐냐

하여튼 정많은 친구였어 정말로

근데 얘 시선 속에서

또 자아를 가꾸어야 하는거지 그게 또한 드러나지 않는 비-존인걸 알면서도

세계-내-존재와 나라는 자아가 

하나씩 발설 되면서 밝혀지고 형성이 됨

어쩔 수가 없음 이거는 


하여튼 침묵을 유지함 그래도

설거지는 고독한 작업이자

계급 사회 최하층의 일이기 때문에


탈-존, 바깥, 중성적 상태

존재자를 그 자체로 가시적인 것의 완전한 가시성의 상태로

낯설게 볼려고 무화하려고 했어 위의 기표 또한 신임하지 않는 시선으로

근데 이것도 의심이 가긴한다 사물의 무성이라는거 자체가 또 존재자의 존재자성으로 입혀지는거 아닌가 하고


하여튼 그게 됐다고 쳐봐 


침묵을 유지한다고 쳐봐


근데 사람들 시선이 마냥 곱지가 않아

침묵하는 사람은 일단 사회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거고

공동현존재가 아니고 하여튼 

그사람들 통념으로 인해 평균적인 시선으로 인해

시선을 당하고 자아를 형성하지 않으려하는 내가 자아가 저절로 형성이 되는 거거든


내가 탈-존화 한다고 해-해당 문구의 주어 서술어 구조도 진짜 어불성설임 /

내가?-


하여튼 

바깥, 탈존, 비-자아 나는 타자다 랭보의 견자는 온전히 느낄 수 있어

그게 뭔지는 이제 알 것같아


근데 사람들 시선이 통념이라고 하는게 

그 사람들 존재 이해가 일단 문제야

이거 자체가 또 탈-존적이긴 한데


중요한 사건은 이거임

자아를 없애면서 침묵을 유지하다가

유리잔을 쨍그랑 깨트렸음


후에 가서 사장이 

말도 없어서 맘에 안들어 보였는지

잔 하나가 얼마인줄 아냐고

7천원 8천원 이라고

오늘 일한 임금에서 2만원 빼겠다고함


여기서 내가 또 어때야 돼

법적으로 문제이니까 정당하게 달라고 해야지

그니까 그 상황 속에서 또 인정투쟁이 발생하는거야

탈-존화를 하려고 했는데 

투쟁 속에서 발설 속에서 자아가 생기는 거지

분노 감정이 생겼고 억양도 커졌는데 메케하게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더라


하여튼 노동청 신고하겠다고 떼쓰니까

주기는 줬음

후에 가서 그 사람이 뭐라했냐

잔 깨트린 뒤에 미안하다고 사과한 마디 없었다고

화가난거라도 하더라고


아니 자아를 없애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니

침묵을 유지할 수 밖에 없고

비-존을 탐지하려 하는 오늘 하루였는데

그 미안하다는 말로 인하여 자아를 만들어야 했구나

하여튼 그렇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했구나


그 사장 점심시간에 밥도 나만 안주고 

인정이 없는 냉혈한이었지만


미안하다고 내가 했어야 했어

탈-존이라 


결국에는

레비나스로 다시 그때는 돌아와야 했었나봐

자아라는게 자기 정립이라는게 필요해

그리고 자아 자체가 비-아이기도 한거기도 하고

미치겠다 정말 


결국 이짓 하는 게

인간에 대한 사랑이긴한데

나 사람들을 사랑하노라하려고 

부득이 계속 정진하는 거긴한데

또한 젊은날에 의미없는 투쟁이기도 하고

경험이기도 하고


오늘은 탈-존을 내가 너무 저돌적으로 돌진한 거 같다

탈-존적인 자아야 내가봤을 때 이게 말이 맞나

탈-존은 정녕 탈-존인 것인가

침묵은 탈-존 그 자체 인가

오 세상이여


탈-존 자체의 현사실성을 품으면

죽어감의 시간 자체를 품으면

사랑의 빛이 가능할 수 있다는 지점 그 지점 까지

나아가려 했는데 오늘은 여하튼 완전 실패다


결국에는 어쨌든 자아를 가꿀 수밖에 없고 연기할 수 빆에 없다. 

중요한 건 나는 속고이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평균적인 존재이해

이것도 솔직히 어설픈 틀인거 같다

베르그송의 인격론

레비나스의 무한한 타자

이렇게 또 나아갸야 하나



아, 정말 제대로 보고 싶다

이게 정녕 가능한가

진짜를 보고 싶고

진정한 사랑을 실현한다는게 가능한 것이냐


오늘은 완전 실패한 하루다


중요한건 이거겠지

하이데거 존재의 은폐성 자체를 드러나게 할 수 없다는 거고 존재은폐는 존재의 알레테이아 세계-내-존재 발생 후에 존재는 자취를 감추면서 사라진다는 거고

그니까 존재는 볼 수 없다는 거임 파수하고 들을 수는 있고

레비나스는 있음의 상태 그니까 존재자가 전부 무화가 되고 그게 탈-존은 아니지만 빈자리이고 이 상태 자체의 주체성이자 자기동일성이라는거지 아마 내가 빠져있는게 이상태 인거 같기도 하고

근데 모리스 블랑쇼는? 

모리스 블랑쇼의 바깥이라

아니 바깥은 가능하지 않을까

침묵은 가능하지 않을까


존재의 울려옴을 파수하는 현존재


타자를 책임 지는 주체-무한의 타자


블랑쇼로부터 가능하지 않을까

타자와 타자 관계에서 형성 되는 그

바깥 공동성 


하이데거의 

죽음으로서의 고유한 가능성

무로부터 존재이해 가능성

이 아니라


블랑쇼의 

죽음의 불가능한 가능성

중성적, 익명적, 죽어감

무-아 탈-존 

죽음으로부터의 발걸음 

여기서 가능하지 않을까


존재파수는 진짜 말이 안돼

이거는 믿기지 않아 사실 

알레테이아가 있어야 그게 돼 

미치겠네 철학은 무한한 말장난이냐


탈-존 자체가 존재근거 정립이냐


하여튼간


블랑쇼와 레비나스 사이를

저글링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내가 소망하는 건

속고로 살진 않겠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고

살고 싶으면서 죽고 싶다는 거고

통통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것


하여튼 자 결론

잔깼을 때

레비나스를 생각해야 했고

묵묵했을 때는

언젠나 블랑쇼였어

하여튼 세계-내-존재를 개방한다 해도

속고는 살지 않겠다고 하면

하이데거를 보면 되고


이러면 되지 않을 까


하여튼

자아는 비-아이면서 자-아이면서 비-아이고

현존은 비-존이면서 현-존이면서 비-존이다



“탈-존을 하면 탈-존 할 수 있는가?”

즉, 탈-존을 의식적으로 시도하는 행위 자체가 과연 진정한 탈-존일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이죠.





? 철학적으로 정리하면




1.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하이데거의 *탈-존(ek-sistenz)*은

‘존재자가 존재의 드러남에 열려 있음’,

즉 현존재가 자신을 넘어서 존재 자체에 열리는 상태입니다.


→ 탈-존은 ‘한다’기보다는 ‘일어난다’에 가깝습니다.

→ 의식적으로 “탈-존하겠다”고 시도하는 순간,

그 주체는 이미 자기를 중심에 둔 자아입니다.

자기를 넘어서겠다는 자아는 여전히 자아입니다.


결국,


탈-존을 시도하는 자아는 탈-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려는’ 그 의도 자체가 이미 ‘현존재의 자기중심성’이기 때문입니다.





2. 

레비나스의 관점에서



레비나스에게 탈-존적인 상태는

타자에 대한 책임,

자기를 넘어 타자의 요구에 열리는 상태입니다.


→ 이 또한 “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타자의 시선과 부름에 의해 나는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 내가 스스로 “탈-존하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타자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나에 대한 기획이 됩니다.





3. 

모리스 블랑쇼의 관점에서



블랑쇼는 탈-존을

‘죽어감’, ‘침묵’, ‘바깥’처럼

항상 실패하는 탈-주체화로 봅니다.


→ 완전히 탈-존하는 순간은 도래하지 않음.

→ 항상 미끄러지고, 실패하고, 도달하지 못함.

→ 그러나 이 실패 속에서만 탈-존은 현전합니다.

→ 그래서 블랑쇼는 말합니다:


“탈-존은 가능하지만,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불가능한 가능성이다





— *블랑쇼(Maurice Blanchot)*의 관점에서.










? 블랑쇼의 대답은 명확하지 않지만, 뚜렷합니다:






“탈-존은 가능하지만, 결코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는다.”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진 자리에 현존한다.”










? 블랑쇼 관점 요약








1. 


탈-존은 ‘감각’이 아니라 ‘침묵’ 속의 균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