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거대한 블랙홀이야.

그 안에는 검은색 해바라기가 있어. 머리를 내밀고 나를 노려보다가 밖으로 나와.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해를 찾다가 화가나서 소리를 질러. 주변의 모든 빛들이 놀라서 멀리 도망가고, 우주에 비가내려. 폭우야. 해바라기는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고개를 흔들어. 근육질 줄기와 징그러운 잎사귀에 맺힌 빨간 빗방울이 해바라기의 땀과 함께 사방으로 튀어서 붉은 은하수를 형성해. 그 때, 빨간 장미가 고개를 내밀어.


장미는 지옥에서 온 짐승처럼 몸부림치며 포효하는 해바라기가 무서워서 잎사귀로 얼굴을 가리고 벌벌 떨어. 


해바라기는 장미와 키스를 해. 검은 씨앗이 땀처럼 뚝뚝 떨어져. 냄새를 맡고 몰려온 우주의 다람쥐들이 파티를 해. 


다람쥐들이 휘파람을 불어. 노란 새들이 날아와서 해바라기 근처를 맴돌아. 새들은 노래하고, 귀여운 우주의 다람쥐들은 씨앗을 하나씩 물고 오선지 위의 까만 음표들처럼 올망졸망 춤을 춰. 태양처럼 노랗게 변한 해바라기는 붉은장미를 안고, 멀리 날아가.


해바라기의 근육질 줄기에 난 흰 솜털이 보여. 솜털사이에 빨간 집이 있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벽난로 앞에 앉은 노인이 내게 인사를 해. 선하게 생긴 노인은 바로 헤밍웨이구나!


노인은 수염을 만지며 껄껄 웃다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버려. 어디로 가는걸까? 밖은 우주공간인데!


다리를 떨면서 망설이다가 일어나서 문틈으로 밖을 내다봐! 노인의 눈동자가 보여! 우주만큼 거대해진 노인의 머리에 달린 푸른 눈 안에 지구가 있어!


지구가 성난 팽이처럼 빠르게 회전하고 있어. 속도가 너무 빨라서 바닷물이 사방으로 튀어. 해바라기의 울음소리가 들려!


내 울음이 아냐. 해바라기의 울음도 아니었어. 지구는 서서히 회전을 멈춰. 겁이나서 문을 닫고, 모닥불 앞으로 가서 앉아. 테이블에 책이 한권 놓여있네? 내가 봐도 되는걸까? 헤밍웨이의 머리가 와서 화내는 거 아닐까?


책을 왜 태워? 이 책은 엄청나게 아름다운 책이야! 파란 가죽으로 된 표지에, 황금빛 글씨가 새겨져있어. 영어도 아니고, 한글도 아니고, 자세히 봤더니 글자가 아니라, 그림이야. 


해바라기와 장미가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오더니 내 옆에 나란히 서서 모닥불을 바라봐. 책을 태워버리라고 말하는 것 같아. 


나는 책을 끌어안고 고개를 흔들어. 해바라기와 장미는 화를 내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어.


덜 닫힌 문이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겁을 줘. 나는 머리를 감싸고 울어.


바람이 불어. 축축한 바람이 벽난로 불꽃을 흔들어. 


글씨들이 음표로 변했어. 무지개 색상 오선지를 타고 내게 날아온 까만 음표들이 기묘한 노래를 불러. 정신이 혼미해져. 문이 활짝 열렸어!


무서워!


숨소리가 들려. 나는 비명을 질러! 책의 주인일까, 성난 해바라기일까, 헤밍웨이일까!


발소리가 들리는데, 어디로 도망가지! 살려줘! 잘못했어! 한번만 용서해줘!


참을 울다가 추워서 정신을 차려. 벽난로 불이 꺼져있네? 까맣게 타서 숯이 되어버린 음표모양 장작에서 피어난 보라색 연기가 방을 가득 채워. 숨이 막혀! 밖으로 나갈래!


벌떡 일어나서 달려! 아! 책을 떨어뜨렸어! 어떡하지?


책이 사라졌어. 나도 사라지고 있어. 내 몸보다 내 심장이 먼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빨간 집이보여. 해바라기 솜털 사이에 숨어있던 그 집이야! 



그 집은 내 집일까, 해바라기의 집일까, 헤밍웨이의 집일까? 좀 무서운 게 그 장면이 떠올라, 공포영화 나이트메어에 나온 그 이층집. 


집 주변에 꽃이나 나무가 있으면 좋았을텐데, 이쑤시계처럼 투명한 솜털 사이에 지어진 빨간 집이라니! 바닥을 한번 볼까?


바닥에 투명한 흙이 깔려있네?


발로 문질러봤더니, 실로폰 소리가 나. 새까만 음표들이 개미떼처럼 몰려와서 내 몸을 잠식해!


문이 열렸어! 아이가 얼른 들어오라고 손짓하네!


얼른 집으로 들어가서 숨을 돌려. 문을 닫고 내게로 온 아이가 가만히 서서 시계를 보네?


헤밍웨이나 해바라기를 기다리는 건 아니겠지?


아이는 말이없어. 무안해진 나는 벽난로를 바라보다가 눈치를 봐. 아이는 말없이 시계만 보고있어. 시계를 보는 게 아냐. 그 옆이 걸린 해바라기 그림을 보고있어.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해바라기와 장미가 키스를 하고있는 그림이야. 아이가 손으로 그림을 가리켜.


난 고개를 저어. 무섭다는 뜻이야. 아이는 나를 안아주고, 내 앞에 앉아.


벽난로가 가려졌어. 답답해. 아이는 말없이 나만 바라봐.


아이가 웃어. 


이제 그만할래.


뭘 그만두냐고 아이가 말해. 노인의 목소리로, 이 아이의 정체는 설마 헤밍웨이인 걸까? 해바라기의 숨소리가 들려.


벽애 걸린 그림을 봐. 해바라기와 장미가 액자 안에서 다투고 있어. 장미의 비명소리가 들려. 벽이 진동을 하다가 쩍 갈라져.


그 파란 책은 내 방 책상위에 있어. 파란 가죽위에 적힌 노란 글씨가 보여. 뭐라고 적혀있는걸까? 


열어보지 말라는 헤밍웨이의 경고일까? 


조심스레 다가가. 쿵쿵쿵! 이건 내 발소리가 아니라, 심장뛰는 소리야. 목이타고, 온 몸이 떨려. 책에서 나온 푸른 연기 때문에 숨이 막혀!


시계소리가 나! 아이가 다시 나타났어! 벽에 액자도 보여! 다시 그 방이야!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