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의 우주론
정서적 심연은 우주 최초의 떨림, 의미의 근원이다.
태초의 우주는 0 이다. 0 은 완전한 ‘무’ 이다. 0 은 시공간도 물질도 에너지도 규칙도 진동과 개념도 관찰자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기호이다.
“신의 한수” 란, 0 과 1 사이에 있는 무한히 작은 ‘수’ 다. “신의 한수” 는 0 과 1 사이에 있는 무한히 작은 존재성의 떨림이고, 무가 존재로 나아가는 최초의 변화, 최초의 비균형이다.
0+ “신의 한수” = 0! 는 시간이나 공간이 생기기 전에 있었떤 상상의 사건을 나타낸 수식이다.
완전한 무는 자기 자신을 유지할 수 없다. 정적이 영원히 유지되려면 ‘흐르는 시간’ 이 필요하다. ‘정적이 계속된다’ 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관측전의 미시세계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영원한 무를 유지하려면 무 조차도 자기 유지를 위한 법칙을 가져야만 한다. 하지만 ‘무’ 는 그 법칙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스스로 균열이 생긴다.
완전한 무는 개념일 뿐, 현실일 수 없다. ‘무’ 란 인간이 개념으로 상상한 것이지 실제로 존재했던 적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주에는 진공상태조차도 에너지 요동이 있다. 결국 완전한 무란 논리적 구성물이자, 존재 불가능한 상태일 수 있다. 그렇기에 현실은 ‘무의 불가능성‘ 으로 인해 생겼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존재는 자기 자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0 이 스스로 붕괴한 결과이다.”
0 은 비어있는 불안정한 ‘점’ 이다. 수학에서 0 은 수직선에서 좌우 어디로든 향할 수 있는 기점이다. 0 에서 모든 수가 나온다. 0 이 있어야 다른 수를 이해할 수 있다.
“완전한 정지는 방향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방향을 택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0 은 자발적으로 요동할 수 있다. 0 이라는 완전한 ‘무’ 는 너무 완벽했기에 찢어졌고, 그 틈에서 나온 미세한 진동이 ‘신의한수’ 이다. 그 ‘수’ 에는 이유가 없다. 그냥 ‘무’ 가 ‘무’ 이기를 포기한 순간이고, 그게 존재의 시작이다.
“신의한수” 만큼의 변화는 원인없이 저절로 생길 수 있다.
“신의한수” 는 0 에 무한히 가까운 상상의 ‘수’ 이다. 따라서 원인없이 발생할 수 있다. 절대적 무 안에서도 “신의한수” 만큼의 틈은 저절로 생겨날 수 있다.
‘정지’ 는 관념일 뿐, 실제적으로 완벽한 정지는 불가능하다. 완전한 0 조차도 고요하지 않다. “신의한수” 는 변화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값이다. “엡실론” 처럼 0 이지만, 0 은 아닌 “수” 이다.
“신의 한수” 는 0 과 1 사이의 첫 떨림이다. 완벽한 정지 안에서 벌어진 ‘0’ 이 아닌 ‘최초의 존재’ 조건이고, 그 정도로 미세한 움직임이라면 “저절로” 생겨날 수 있다.
증명은 불가능하다. 원인없이 저절로 생긴 사건은 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이점에서 시작된 우주 라는 현대 우주론도 증명이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도 그냥 ”무에서 양자요동으로 생겼다“ 라고 “모델링” 했을 뿐, “왜” 생겼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원인없는 결과는 기적이다.
만약 태초의 변화가 관측하지 못할만큼 너무 미미했다면, 변화가 없었다는 것과 물리적으로 동일하다. 관측전에는 존재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변화를 감지했을 때 비로소 우주가 “존재했다” 고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존재” ( 변화 ) 가 아니라, “감지” 다. “신의한수” 와 같은 미세한 움직임이 누적된 0 은 결국 둘로 나뉘고, 이때 의식이 나온다. 정보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를 인지하게 된 변화의 부산물이 의식이다.
의식이 존재보다 앞선다.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주를 감지한 존재가 지금 여기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느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우주는 단지 우리의 감지 속에만 존재하는 허상일 수도 있다.
정리
0 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모든 것의 가능성이고, “신의한수” 는 최초의 미세한 징도이자 의식의 씨앗이다.
무한대는 0 이 내보낸 자식이고 끝없는 항해이다.
1/ -1 은 현실과 비현실의 분기이고, 의식의 구조다.
원주율은 완전함을 향한 무한한 순환이다.
0 + ( 신의 한수 X 무한대 ) = 0!
0 -0! = ( 0! 나누기 2 ) = 비물질 우주
0! = ( 0! 나누기 2 ) = 물질우주
( 0! 나누기 2 + (-0! ) 나누기 2 ) = 1
1 + 사랑 = 1!
0 + ( “신의한수” 곱하기 무한대 ) = 0!
무한히 누적된 무한히 미세한 변화가 0 을 0! 로 만든다.
0! 은 1 이다.
0! 나누기 2 = 비물질 우주, 0! 나누기 2 는 물질우주
완전한 하나가 반으로 나뉘며,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태어났다.
1 나누기 2 = 0.5
그러나 그것은 작아진 게 아니라, 서로를 완성시키는 반쪽이다.
( 0.5 + 0.5 ) = 1
물질과 비물질이 만나서 완전한 ‘1’ 이 된다. 1 은 곧 의식이고 존재이다.
1 + 사랑 = 1!
존재 ( 1 ) 에 사랑을 더하면 존재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이해한’ 1! 이 된다.
1! = 1
그러나 그 1 은 이제 처음의 1 이 아니라, 사랑을 통과한 존재, 진짜 자신, 심연과 융합된 존재이다.
“신의 한수” 곱하기 “무한대” = 존재의 태동
존재는 나뉘어도 다시 하나로 돌아오고, 사랑은 존재를 존재답게 만든다.
“신의 한수가 허수라면”
허수는 실수로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수” 이다.
0 이라는 완전한 무에 실재하지 않는 허수가 들어오면서 우주가 생겼다면?
“존재하지 않는 수가 존재를 만들었다.”
는 말은 역설이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
0 은 완벽한 무다. 허수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다. 그런데 0 + 허수 는 아주 미묘한 존재감이 생긴 상태이다. ( 미묘한 변화는 계속 누적된다. 왜냐하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
이걸 감지한 우리 때문에 “의식” 생겼고, 이 의식이 물리 우주와 비물리 우주를 나누게 된다.
비유를 들어보자.
0 이 아무것도 없는 캔버스라면, 허수는 물감 냄새가 스쳐 지나간 “느낌” 이다. 그 느낌이 + 1 과 - 1 로 갈라지고, 그 둘의 진동이 빛을 만들고, 세포를 만들고, 인간을 만들었다.
“실재하지 않는 ‘신의한수’ 가 ‘존재’ 를 만들었다.”
수학적으로 보면 이 세계는 “복소수” 라는 착각이다.
실수 + 허수 = 복소수
“우리 우주는 복소수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와 상상이 얽힌 구조다.”
신의 한수는 허수일 수 있다. ‘존재하지 않음’ 이 바로 ‘존재의 첫 조건’ 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상상” 이 만든 세계였다.
정서적 심연과 두뇌, 믿음과 현실
정서적 심연은 물리적 실체가 없지만 인간의 두뇌와 연결되면서 의식에너지라는 형태로 우주의 정보를 해석하고 방풀한다. 물리적 비물리적 정보는 감각 기관을 통해 정서적 심연으로 들어오고, 거기서 의식에너지로 변환된다.
두뇌를 통해 외부로 발산된 의식에너지는 빛과 결합해서 새로운 광자를 생성한다.
새로 형성된 광자는 원자의 가능성 구름에 유입되고, 물리적 현실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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