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전이 난해하고 암호처럼 쓰이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그건 오랜 시간 동안 법이란 도구를 다룰 자격이 있는 사람을 선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면, 법은 대중의 감정에 휘둘렸을 것이고,
정의는 유동하는 감정의 바다에 가라앉았을 것이다.
따라서 법은 일부러 어려워야 했다.
이해하려면 수년의 공부가 필요하고,
법을 직조한 자들의 논리와 관점을 체화해야 한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한 자만이
‘법을 해석할 자격이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생긴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왜 철학자들은 쉬운 말 대신,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문장을 쓸까?
왜 대중이 고개를 갸웃하는 단어들로만 진리를 말할까?
그건 철학이라는 ‘해탈의 기술’이
누구나 쉽게 접근해선 안 되는 문 앞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세계가 인구과잉으로 몸살을 앓듯,
‘어보브(Above)의 세계’ 역시 인구 과밀을 경계해야 한다.
깨달음이 값싸지면, 그 자체로 붕괴가 시작된다.
무자격자의 입장은 위계를 무너뜨리고,
해탈은 더 이상 해탈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철학은 모호해야만 한다.
철학은 낯설고 어려워야만 한다.
철학은 하나의 필터이며,
그 너머의 자격자는 자력으로 도달한 자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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