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에 적응하기엔 너무나 미약한 존재였다.
날 한순간이라도 부모님은 얼마나 한심하다고 생각하셨을지.
어릴 때부터 무의미함에 취했었다.
글짓기 대회에서 도움을 받는 아이들을 보곤 나의 글짓기는 무의미한 행위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초등학생 혼자서 쓴 글이 장려상을 받았을 때도 그저 무의미한 글에 그쳤으니. 내가 처음으로 공부에 흥미가 생겨 2주간 열심히 공부하며 받은 점수가 66점일 때도 난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목표 점으로 잡았던 친구는 과학 100점과 다른 과목 상위권으로 바라볼 수도 없게 날아가버렸다. 그렇게 무의미함에 나를 빠트리는 것은 정말 쉽고 편했다. 하루하루가 무의미해지고, 순간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그 순간을 유의미하게 쓰는 이들을 보며 다시금 되뇌었다. 나 자신이 얼마나 무의미한지에 대해.
내 마음은 누더기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버렸다.
이제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조차 모르겠다. 그렇게 내 마음은 사라져버리고 남들이 다 가진 배경만 덩그러니 남은 아이러니.
변명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지러워 걸음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도 변명이었고, 모든 것에 집중할 수 없음은 더욱이 변명이었다. 찢어질 것 같이 아프던 오른쪽 손목은 핑계고 변명이었고, 5분만 걸어도 도끼 등으로 맞은 것 같은 내 다리도 변명이었다.
주의력 결핍이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생각했던 문제점. 이는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으며 치료해야 한다는 걸 어디선가 얼핏 들어본 기억이 난다. 다만 의지가 박약해서, 부모님이 싫어하시고 걱정하실까 봐. 단지 그런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약을 먹고 현실에 적응하여 멋진 삶을 살아가는 나는 꿈속에 두기로 했다.
나에게 주어진 이 삶은 너무나도 과분했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그려가는 삶은 너무나도 과분했다. 나는 그것을 담을 그릇조차 완성하지 못한 한심한 이가 되어버렸다.
난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죽었어야 했다.
그저 주어진 삶을 생각하고,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그런 삶을 살았어야 했다. 현실의 고뇌를 생각하기엔 너무나 가볍게 태어났고, 그 고뇌에 적응하기엔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였으니.
남들이 하는 걸 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혼자서 병원을 가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고, 식당에서 주문을 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남들이 대부분 걸어갔던 길을 걷지 않았던 내가 한심했으며, 부모님의 품속에서 어리광만 부리고 자란 내가 한심했다. 이번 해는 나에게 생각보다 많은 짐이 짊어졌다. 남들이 버티는 무게라고 생각했고, 대부분 그랬다. 그렇기에 버티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그 순간 속에도 남들이 날 어화둥둥 키운다던 부모님을 미워하지 않았다. 나를 홀로 두지 못한 것은 과거의 미안함이요, 나를 강하게 키우지 못한 것은 책임을 다하기 위한 의무감이니 나는 그들을 원망할 자격조차 없었다.
바뀌지 않는 나는 결국 원망스럽고 한심하다.
이런 기분이 지나고 나면 또 바람처럼 사라져버릴 의지가 밉기도 하다. 곧 수십, 수백 가지의 쓸데없는 생각들이 내 뇌를 채우고, 나를 다시 멍청하게끔 만들 것이다.
아, 이것도 변명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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