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스치듯 내 손목을 지나가자
피가 조용히 솟아올라 방울방울 맺혔다.
그 선홍빛의 물방울들은 마치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꽃처럼,
참으로 아름다웠다.

잿빛으로 짓눌린 나날 속에서
무채색뿐이던 세상에 유일하게 색을 입혀주는 건
언제나 내 피였다.
눈부실 만큼 붉은 그 색은,
내게 살아있다는 감각을 가장 선명히 일깨워주었고
그 순간만큼은 괴로움마저 잠시 잊게 했다.

무너져가는 육신과 바스라지는 정신이
더는 버티지 못할 때쯤이면
나는 다시금 손목 위에 논밭처럼 작은 길들을 새겼다.
그 길 위로 피어난 피의 꽃들은
비명보다 조용했고, 위로보다 따뜻했으며
어둠보다 환했다.

그건 고통의 끝이자,
유일한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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