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시간의 문을 엽니다.
볼록 하고도 오목한
가깝고도 먼먼
원근이 못된 환영을 펼치고
사슴의 뿔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게 솟고, 갈라져서
엄마, 나 이같은 아픈 장난을
계속, 계속 연이어가도 될까요.
”문지방에 서 있지마“
라고 하셨죠.
통통하게 흘러가던
당신과 나의
작은 방, 작은 집, 작은 식탁 속에서
구수한 된장찌개와
흰 쌀밥,
그리고
티비 소리,
이기만 하면
저녁과 장마비 내리던 밤은
당신 맡에서 쉽게, 쉽게도 흘러갔습니다.
나는 당신을 잃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몰라도.
나는 당신을 영원히 잃었습니다.
가져본 적 없는 소복한 어머니를
베게로 삼아 흰이불 속에서
편안한 밤을 지새웠고
달래주는, 달래주는
자장가가, 목소리가
두 번씩, 두 번씩
들리고, 들리고
자장, 자장
우리, 아들
적적-
구구-
마지막 장입니다.
나는 도시에 있어요.
도시는
오색빛 찬란한 돌아가는 큐브
이거나
회색 빛 이거나 아니면, 흰 빛의 반복
수없이 많은 그림자 형체 지나가거나
빤딱한 폴리에스테르 껍질들이 내 얼굴에 휘날리는 곳.
심장이 갑갑합니다.
손잡아 본 적 없는 어머니.
우심방도 좁고,
좌심방도 좁고,
어디에서 살까요.
땅바닥에 드러 누울까요.
안녕.
ㅡ
우심방도 좁고, 좌심방도 좁다. 살아간다라는 느낌을 받는 삶의 형식을 재정립해야한다고 아픈 몸이 나를 이끈다. 사람을 만나고 안정적인 드라이빙하면 좋을까 싶은데. 그렇게 좁은 가로수 길을 천천히 굽이타고 말야. 불장난을 분출해서 더 없이 다시 아퍼졌다. 눈이 너무 아프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은가. 그래도 숨하나가 있고, 숨 하나가 있다고 생각 할때 숨 하나는 꺼트려짐으로 인해서 새로운 숨이 틔이고 다시 또 이렇게 반복되리라. 보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손잡아 주고, 손잡아 주었던 사람들과 마지막까지 즐겁게 도는 강강술래를 하고 싶다. 그것이 인생 아닐까 다시 한번 오만 하고서, 나는 더 없이 나에 대한 권위에 대하여 직립하고만 살았지 않았나 싶다. 너무나도 혼자인 직립 보행 인간. 나에 대한 나의 정의의 정의 영원히 붙박혀 혼자 돌고, 돌아서 곧내 방향 감각을 잃고 도시에서 흐트러진자. 강박한 시스템의 히스테리에 정신병을 앓고, 닳고 닳아서 딱딱한 그물망에서 역설적으로 신기루에 혼취 된자. 나를 그렇게도 불러도 좋으리라.
도보 보다는 도로가 더없이도 크고 많게도 지나가고,
여름날, 구석 좁은 골목길에 작은 영화관이 하나 있다.
거기서는 에어컨 바람과 LSD를 파는데 물고 물어서 감동한 자 하나 있다.
시네마는 뤼미에르 빛이야
사랑이고 나도 알지.
근데 그건 도시에서 있을 수 없어.
시네마는 빛이고 사랑이지만,
그래서 네가 좋았지만
빛은 영화관을 나와도
눈부시게 내리 꽂기에
암막커튼을 펼치고
빛의 빛을 떠나
빛을 쐬야지
몇몇 이미지가 인상적입니다. 혹시 연배가 어떻게 되십니까?
스물넷이에요
@ㅇㅇ 생각 보다 어리군요. 앞으로 더 많이 발전하실듯 합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