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으로부터 출발하겠다. 『시학』은 주로 그 시절 만들어졌던 문학(비극 드라마)의 원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제 9장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앞서 말한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시인이 할 일은 분명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날 법한 일, 즉 개연성 또는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가능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다. 역사가와 시인의 차이가 운문을 사용하느냐, 산문을 사용하느냐에 있는 것은 아니다. 헤로도토스의 작품은 운문으로 고쳐 쓸 수도 있겠지만, 운율이 있든 없든 그것은 역시 역사임에는 변함이 없다. 차이점은 한 사람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은 일어날 법한 일을 이야기한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진지하다.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더 강하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것을 말한다' 함은 말하자면 이러저러한 사람은 개연적으로 또는 필연적으로 이러저러한 것을 말하거나 행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가 비록 등장인물에게 고유한 이름을 붙이더라도 시가 추구하는 것은 보편적인 것이다. '개별적인 것을 말한다' 함은 예를 들어 알키비아데스는 무엇을 행하거나 무엇을 당했는지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여기서 말한 '시'는 사포 등의 시인이 적었던 고대 그리스 서정시가 아니라 희극이나 비극 드라마를 일컫는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가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진지하다는 말은 문학에는 권선징악과 같은 당위가 그 안에 녹아있는 반면에 편년체의 역사에서는 그러한 것을 찾아볼 수가 없거나 찾기가 매우 힘들다는 말과 같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선한 사람이 고통을 받고 악인이 복을 누리는 것이 만약 하늘의 도라면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묻고 있다. 역사는 참된 사실을 기록한 것인가? 참다운 사실을 기록한 것인가? 문학은 허구의 세계일 뿐인가? 어떤 경우는 역사가 거짓을 말하고 문학이 진실을 지시할 수 있지 않은가? 이에 대한 하나의 사례를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란 소설책에서 찾아볼 것이다.


『장미의 이름』을 번역한 이윤기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역자 후기를 남기셨다.


  우리말 『장미의 이름』이 처음 독자들 손으로 들어간 것은 1986년의 일입니다. 역자인 나는 이 소설의 번역 작업과 관련, 숱한 찬사와 질정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이 『장미의 이름』은 내가 낸 1백여 권의 역서 중에서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준 책이기도 하고 나를 가장 비참하게 만들어 준 책이기도 합니다. 나를 행복하게 한 것은 물론 남들의 찬사입니다. 그러나 나를 비참하게 만들 것 또한 그 찬사입니다. 내가 여기에서 비참함이라고 하는 것은 속사정 모르는 무책임한 찬사에 은밀하게 행복해한 데서 오는 비참하다는 느낌. 뻔뻔스럽게 그런 찬사를 받고 있으면서도 그 찬사에 걸맞은 어떤 내재율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비참한 느낌을 말합니다.


이윤기 선생님의 말 중에서 '내재율'이라는 표현이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문학이 역사보다 철학적이고 진지하다'는 표현에 대응될 것이다. 번역자 이윤기 선생님께서 이 소설의 진의를 발견하고 있지 못한 가운데 철학자 강유원 선생님께서 <『장미의 이름』고쳐 읽기>라는 글을 이윤기 선생님께 전달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윤기 선생님은 『장미의 이름』 원고를 세 번 번역하셨다 한다. 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어떤 필연성 또는 개연성이 있는가? 움베르토 에코는 이 소설로 어떤 사실을 비밀스럽게 드러내려고 했는가? 이 글을 적는 내가 이 소설의 그럴 법한 내재율에 도달할 수가 있는가? 만약 내가 이 소설의 내재율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한낱 지적인 망상일 뿐인가 아니면 그에 관련한 모든 사실을 부정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문학 속에서 비의를 찾아 그것으로 기록되고 남아 있는 역사를 부정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필연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용기를 내어 그럴 듯한 개연성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소설에서 도미니크회와 프란체스코회의 입장을 나누는 소유와 청빈의 논쟁의 본질은 예수가 살았던 시대에 화폐경제가 있었는가 아니었나 하는 문제인 것 같다. 도미니크회는 예수가 돈을 내고 숙박했다는 편이고 프란체스코회는 예수는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는 편인 것 같다. 성경에 유다가 은전 30냥에 예수를 팔았다는 그 서술은 프란체스코회에 대한 도미니크회의 교리적 승리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화폐경제의 문제는 예수시절 로마 뿐만이 아니라 고대 희랍 세계에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나이를 중심으로 한 동맹은 델로스 섬에 금고를 마련하여 동맹국의 돈을 징발했다는 것이다. 고대 희랍에 돈이라니? 금광은 어느 지역에 있었으며 수많은 폴리스 중 어떤 폴리스에서 단위가 되는 화폐를 만들었을까? 고대 희랍 세계의 돈은 어디서 나와 어디로 흘러간 것일까? 순금인지 합금인지 판별하기 위해서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가 있었던 것일까? 동아시아의 경우 송나라에서 지폐가 등장하고 명나라에서 세금을 은으로 거두었다고 한다. 중국의 풍부한 물산이 다른 나라로 팔려나갔다 하기에 대항해시대 남아메리카 은광에서 캔 은은 중국으로 흘러들어갔다 한다. 그리스 로마의 화폐경제가 있었다면 그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소유와 청빈의 논쟁에서 소유를 강조했기에 소유권과 계약 그리고 그 이행에 대한 법률인 로마법이 민법의 영역으로서 발달하였을까?


소설에서 전설적으로 등장하는 돌치노 수도사의 모습이 사실 예수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호르헤 수도사는 이단에 대해서 말한다. 돌치노 수도사와 같은 경우는 이단이었지만 그 이야기는 정통의 계보에 한 스토리로 편입될 수 있는 것이라고. 더 위험한 것은 이슬람에서 건너 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지적인 훈련을 받은 수도사들이라고. 지적으로 훈련된 그 수도사들은 기독교 교리의 모순을 지적하고 나선다. 기독교 세계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다. 호르헤 수도사는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에 미처 적히지 못한 희극론의 이야기를 한다.


희극이 웃음을 유발하는 연극이라고 할 때 『시학』에 희극론을 적는다는 것은 희극의 텍스트를 분석하여 어떤 것이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인지 그리고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을 적어 낸다는 의미이다. 그 말은 요즘식으로 말하면 옛날에 방영되었던 개그콘서트 꼭지의 대본을 분석하여 웃음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웃음에 대한 많은 철학적 설이 있을 수 있다. 쇼펜하우어도 그의 책에 웃음에 대해 적었고 베르그송 또한 웃음에 대해 적었다. 문제는 그 근거가 되는 대본을 예시로 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개그콘서트가 가끔 봐야 재미있는 이유는 같은 내용의 희극을 볼 때 그 횟수가 반복될 때마다 웃음이 반감하기 때문이다. 개그콘서트가 폐지되고 난 이후 일자리를 잃은 박지선이란 희극배우가 자살하는 일이 있었고 자살하기 전의 그녀가 어느 무대에서 자기 자신이 못생기지 않았고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그 내용을 유튜브로 보게 되었을 때 추하다는 이유로 웃음을 준다고 하였던 그 배우의 코미디 영상은 더 이상 웃기지 않고 기괴함이 드러나 보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웃음에 대해서는 문헌을 사례로 들어 그 성질을 논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을 기획한 한 집단의 사람들이 『시학』의 뒷부분 즉 희극론을 적기 위해 자신의 노력을 기울였을 때 그 작업에 그럴 듯 하게 성공한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편 소설에서는 필경사들이 나온다. 수도원 도서관에 저장된 책들의 사본을 만드는 사람들인데 그 매체로 양피지가 사용된다. 소설에서 문제가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아마지亞麻紙에 적혀 있었다. 아마지는 마의 한 종류를 직조해서 만든 천과 같은 기록매체가 아닐까 싶다. 중국의 4대 발명품으로 종이, 화약, 나침반, 인쇄술을 꼽는다. 그 중 종이는 한나라 시대의 채륜 이라는 사람이 발명했다고 한다. 탈라스 전투를 통해 이슬람 세계로 전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종이가 없었던 세계는 문자 기록이 없는 깜깜한 세계였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중국은 죽간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인도 문명권에서는 부처님 말씀이 나뭇잎에 적혔다고 한다. 그것을 패엽경貝葉經이라고 한다. 그와 비슷한 기록 매체가 서구 고대에도 있었는데 그것이 파피루스라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최소 3000년 전에 발명되어 4세기까지 유럽과 중동에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양피지는 왜 쓰였을까? 하나의 설명은 양피지가 파피루스보다 내구성이 좋고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의심한다. 종이가 패엽을 대체해 나간 것처럼 양피지를 파피루스와 같은 것이 대체해 나가는 것이 더 옳은 방향이지 않았을까? 파피루스라는 그 오랜 기록 매체에 기술적 진보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매체의 퇴보로 건너갔다. 그것은 도대체 무슨 사연인가? 중세 수도원에 대한 한 가지 더 의문을 표하자면 수도원에서 옛날 희랍어로 된 고대 희랍의 문헌들이 필사되어 전승되어 내려왔다면 이슬람으로부터 아랍어로 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재수입 해 올 이유가 무엇일까? 수도원에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는데. 이슬람의 역사와 독립적으로 희랍어로 된 고전 연구만으로 토마스 아퀴나스가 등장했어야 옳지 않은가? 아마도 이슬람의 문헌이 그 철학과 사상이 서구 세계로 유입된 것은 '아프리카의 끝' 이베리아 반도의 레콩키스타로 인한 것이라고 에코는 추측하는 것 같다. 그 때 수입된 이슬람 문명의 정수가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것이라고.


『키프리아누스의 만찬』은 고대 희랍 신화를 뜻하는 것으로 글을 배우고 쓰는 사람들로서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들을 짓고 베끼고 전해온 것이라고 작가는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공자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적지 않는다는 태도와 대비되는 것이다. 현재 희랍 신화를 번역하시는 분은 어느 수도원에서 언제적 희랍어로 기록된 정본을 기준으로 삼는지 나는 모르겠다.


이러한 사실들을 움베르토 에코와 같은 사람이 알게 된 것은 1920년대 이집트 피라미드를 조사하던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차례로 의문사를 당하게 된 일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일명 파라오의 저주라고 불리우는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에코의 소설에서도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차례로 의문사를 당한다. 영국은 파라오의 저주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자국의 최고 지성들을 파견한 것이 아닐까. 그 중 한 명이 버트런드 러셀 (윌리엄 수도사) 이고 다른 한 명이 아놀드 토인비 (베르나르 기) 가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역사의 거짓 증거라면 이집트의 파피루스도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출애굽의 역사 또한 부정할 소지가 있는 것이며 고고학이 가장 발달했다는 영국의 역사 서술이 특히 토인비의 4대문명의 사관 또한 오류를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내 의심과 추측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정도의 한낱 지적인 유희로만 그치기를 독자 여러분들께 제안하는 바이다. 이 말을 흘려듣지 않고 진지하게 여겨 그에 대한 탐구를 진행하려 한다면 여러분들은 견고하게 구성된 패러다임 아래 찬란하게 빛났던 고대 문명을 증거하는 무한히 많은 사료와 유물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가다 보면 그 문명이 사실 실존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믿는 사람일지라도 그럴듯한 환영에 진상眞相을 마주한 것과 같은 애착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이 글을 적기까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위해 인생을 사신 나의 선생님께 나는 많은 것을 빚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