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자>

내가 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건
나는 그저 '있는 나'라는 것이다
나는 그 무엇도 아니다
나는 당신이 바라는 그 어떤 무엇도 아니다
어쩜 나도 무엇일 수는 있겠지
곰팡이를 길러서 빵을 부풀려
지랄맞은 검은 입구멍에다 쑤셔 넣을 수도
길 없이 나돌아 다니는 개울물을 한 움큼 퍼서
귀신같은 심연에다 색을 칠할 수도
바늘에다 썩어가는 존재를 한 움큼만 짜넣고
대신 네 속의 고름을 한방울 빼낼 수도
그런 류의 나를 너는 바라고 상상해도 좋다

하지만 그건 "있는 나"가 아니다
당신이 바라는 나를 나는 말하지 않겠다
삐적마른 서류철의 뼈다귀에다 나를 구기고
새빨간 증명서 위에서 나를 비틀고 쥐어짜도
비틀어진 신분증 속으로 나를 팍팍 구겨 넣어도

나는 쓰여지지 않는다.
그저 있는 나로서
누군가가 나를 쓸 수가 없다.

이런 나를 그대여, 이해할 수 있는가?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