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눈코뜰새도 없이 사라지는 인간입니다. 유령과 투명의 인물이구요. 쓸데 없이 자라나는 담쟁이 덩굴 같은 어느 소설에서 잘 눈에띄지 않고 별로 나오지 않는 한 번씩 자리라도 참석하는 그런 허다한 등장인물입니다. 특징이 없어서 이런 식을 고집합니다. 땅딸막하게 언술 할 수 밖에 없어 사죄드립니다. 



나는 책 속의 한 파트에서 연인과 연인이 분홍빛의 입술에 서로를 담굴 때, 그 밑의 강둑에서 초란히 앉아 흘러가는 물결을 바리보는 웅크려있던 뒷모습입니다. 얼마나 내가 지나가기만 하는 작은 돌덩이 인지 아시겠지요. 나를 보시지 않으셨겠죠. 당신은 두 개의 아리따운 작은 반달이 만날 때에 두 눈을 그곳에만 고정 하셨으니까요. 


기린이 나무 잎섬에 검은 혀를 내밀 때, 그 혓바닥이 너무 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내용의 의미없는 주장을 펼치려고 나와 같이 지나가는 엑스트라들의 옷깃을 무례하게 붙잡는 짓을 즐기는 하루를 보냅니다. 


삶에 방편이 없어 차갑든 뜨겁든 이리저리 맴돌까요. 나는 언제나 바람과 함께가 됩니다. 가로등이 새파랗게 내려 앉을 때 저녁을 알리듯 나도 그런 역할 하나 맡는 무생물의 도구나 또 쓸일 많은 기구가 되고 싶어요. 커다란 트럭의 배 밑에 숨어있는 장기스런 엔진의 움직임을 도맡는 파이프 하나라도 말이지요. 



파이프를 붑니다 안녕. 나는 파이프를 또 붑니다. 안녕. 


역할이 또 생기고야 말았어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