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은 언제나 콘돔을 했다.
처음엔 그게 고마웠다.
피임에 신경 쓰는 모습, 책임감 있는 태도,
나를 아껴주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시간이 흐르고, 횟수가 쌓일수록
그 초박형 라텍스 한 겹이
점점 우리 사이에 벽처럼 서 있었다.
그는 나를 벗기고, 입맞추고,
숨소리를 나누며 나를 끌어안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나는 마치 그가 나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처럼 느꼈다.
그는 내 안으로 들어오지만
나는 그의 온도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항상 뭐 하나 막혀 있다.
그건 단순히 고무막이 아니라,
그의 마음 한 켠까지도 가로막는 경계선처럼 느껴진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사랑을 하고 싶었고,
라텍스는 우리 사이를 또 한 번 가로막았다.
그는 나를 안고, 끝까지 밀착된 듯 가까워지지만
마지막 순간이 오면 언제나 어딘가에서 멈춘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경계,
그의 숨은 내 목덜미에 고이지만
그의 온기는 내 안까지 스며들지 않는다.
우리는 겹쳐 있지만, 완전히 닿지 않는다.
그의 사랑은 늘 나를 감싸는 대신, 나의 가장자리에서 멈춘다.
그는 나를 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라텍스 너머에서 들려왔다.
가까운데, 너무 멀었다.
이해는 한다.
그건 무책임해서가 아니라, 책임지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바랐다.
한 번쯤은 그가 나를 있는 그대로 믿어줬으면.
조심스럽게 덧씌워지는 라텍스처럼
그는 사랑할 때도 언제나 한 겹의 거리 두기를 한다.
나는 점점 지쳐간다.
서운하다고 말해도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 문장이 마음속에 고인다.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하지만, 그 질문은 이미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그래,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의 몸은 따뜻하지만
그 온기가 닿기 전에
항상 라텍스가 먼저 나를 감싼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그 얇고 차가운 고무막이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끝내, 마음속에서 터져 나온다.
그럼 ㅅㅂ뭐 어쩌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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