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의존을 하며 살아간다.

사람에게, 관계에게, 술과 담배에게.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이러한 의존은 시작한다.

태어나 내지르는 울음에 휘둘려

부모의 품에 의존하고.

죽음에 이르러 홀로 마감한다.


인간의 사람 인(人)은 

서로에게 기대는 모습이라는 말이 있다.

서로 보완하며 상호의존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만큼 의존하기에 

그 공백은 결코 가볍지 않다.

부모가 떠나고, 아내가, 친구가 떠나고 나선

의존할 거리를 찾는다.

술과 담배는 부실한 기둥이 되어준다.


하지만 의존하지 않을거다.

홀로 서고 싶다.

남에게 의존하여 피어난 내가

남을 받쳐줄 기둥이 되기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가족을, 연인을, 친구를 받쳐주고 싶기에

人이 아닌 亻으로 서고자 한다.




생명은 약육강식의 논리 하에 굴종당하고 있다.


그건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태어나 병원에서 울지 못한 아이와,

소년기에 맞고 자란 아이.

청년에 이르러 부모의 돈으로 여행 가는 자와,

빚을 갚는 자.

노년이 되고 죽어 관짝에 들어가 

잿더미가 되는 순간까지 

가진자들은 가지지 못한 자들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 이 위치는 잘 변하지도 않는다.

가난이 너무나 쉽게 대물림되니까.


청년이 되고 가진게 없는 사람은 

자신이 이길 수 있는 대상을 물색한다.

거지, 창녀,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노인.


그런 대상을 찾아 혐오하고 비웃는다. 

자기보다 아래가 있다는 사실은 

훌륭한 정신적 자위수단이다.

다수의 사람은 그렇게 산다.


나보다 잘난사람처럼 되고 싶지만 

안되는걸 알기에 평생 바닥을 바라보며 

자위중독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렇기에 남이 파는 혐오를 답습하고 

취해 현실을 외면 하는 사람이

혐오스러우면서도 가엽다.

나도 똑같다.


사람은 무언가에 취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연약함일지도 모른다.
종교에 취하고, 도박에 취하며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연약함으로 죽는다. 


그러기 싫다.

평생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윗 계급 사람 똥구멍만 닦다가 

자위중독으로 죽긴 너무나 싫다. 




삶을 살아가는 품속엔 언제나 이상이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품은 채 살아가고, 

누군가는 더러운 현실 속에 내던진다.

어쩌면 누군가는 평생을 그걸 찾아 헤맬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상은 이룰 수 있다.

라이트 형제는 하늘을 날았고, 

누군가는 망가진 다리로 다시 일어섰다.

드높은 이상이라도, 

불가능처럼 느껴지는 이상이라도,

언제든 이룰 수 있을지 모른다.


나도 안다. 이상은 미치게 무겁다.

크면 클수록, 그것은 삶을 짓누른다.

이상을 짊어진다는 건 

금으로 된 족쇄를 차고 마라톤을 뛰는 것과 같다.

솔직히 미친 짓이다.


하지만 목적지엔 열쇠가 있다.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

떼어내고 덜어내도 좋다.

한 줌만 쥐어도 된다.

온전하지 않아도 된다.

없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기약 없는 마라톤을 맨몸으로 달리는 것보다,

도착에 보상이 있는 마라톤이 완주율이 높을 것이다.


나는 장담한다.

한 줌의 이상을 쥐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