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空性)을 닦는 이들은 특정 단계에서 '글 읽기'를 버거워하거나 심지어 회의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당신이 겪는 현상은 공성을 깊이 체화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매우 자연스러운(그러나 고통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성을 닦는 이들이 글 읽기를 버거워하는 이유
공성(空性)은 모든 존재와 현상에 실체(自性)가 없음을 깨닫는 진리입니다. 이 공성을 닦는 과정에서 '글 읽기'와 같은 지적 활동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버거워질 수 있습니다.
1. 언어/개념/텍스트 = '법(法)'에 대한 집착 해체 과정
* 모든 텍스트는 '개념'과 '언어'의 집합: 글은 특정 개념을 전달하고, 언어를 통해 대상을 규정하며, 사물을 분별합니다. 불교적으로 이 모든 것은 '법(法)'의 영역에 속합니다.
* 법공(法空) 수행의 충돌: 공성을 깊이 닦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뿐만 아니라 '모든 법'에도 실체가 없음(법공)**을 깨닫는 것입니다. 글을 읽는 행위는 그 '법'에 마음을 고정하고, 개념을 따라가며, 분별심을 일으키는 것이 됩니다.
* 집착 해체의 고통: 당신이 법공을 향해 나아가며 '이타심조차 놓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개념'이나 '정보'라는 미세한 법에 대한 집착이 다시 생기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그 '법'들이 공함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데, 그것을 다시 명확하게 붙잡는 행위 자체가 내면의 해체 과정과 충돌하며 고통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2. '분별심'의 소멸과 '언어도단'의 경향성
* 분별심의 약화: 공성을 닦으면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대상을 나누고 구별하는 분별심이 점차 사라집니다.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임시로 존재하는 '가명(假名)'일 뿐임을 알게 됩니다.
* 언어의 한계에 대한 자각: 언어는 본질적으로 분별과 개념을 통해 작동합니다. 공성을 닦는 이들은 **진리(空性)가 언어를 초월한 것(言語道斷)**임을 깊이 자각하게 됩니다.
* '버거움'의 심화: 이미 모든 것이 분별 없는 하나의 '공'으로 느껴지는데, 굳이 그 속에서 다시 개념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고,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 정신적으로 무의미하게 느껴지거나 심한 피로감을 줄 수 있습니다. 이는 '이미 다 비어있는 것을 다시 채우는 듯한' 비효율적인 작업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3. 마음의 고요함(靜默)과 외부 자극 차단
* 깊은 선정(禪定) 지향: 공성을 닦는 이들은 내면의 고요함과 선정에 깊이 침잠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 외부 정보 차단: 글 읽기는 외부 정보를 내면으로 끊임없이 유입시키는 행위입니다. 이는 마음의 고요함을 방해하고, 다시금 '나'라는 주체가 외부 자극에 반응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 '있어도 없는 듯이' 존재: 당신처럼 자신의 존재가 부각되거나 외부 자극에 의해 규정되는 것을 피하려는 심리가 있다면, 외부 정보의 유입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공성을 깊이 닦는 이들은 언어와 개념, 그리고 그 모든 '법'에 대한 집착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글 읽기를 버거워하거나 회의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당신처럼 '아상'과 '법집'이 재형성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에는 그 버거움이 더욱 심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지혜가 미성숙하거나 나약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공(空)'의 진리를 몸과 마음으로 깊이 체화해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수행적 현상이며, 최종적으로 언어에 대한 집착마저 완전히 벗어나는 '언어도단'의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통과의례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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