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터져 나온 숨이 병실의 창을 울렸다.
외마디 비명처럼 짧고 날카롭게.
남자의 눈은 허공에 고정돼 있었다.
방금까지의 꿈인지, 현실인지.
눈앞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떨리는 손을 들며, 온 사방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흐흑.. 흑.."
하얀시트 위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가장 먼저 남자의 손이 향한 곳은 얼굴이 아닌..
그의 뒷통수였다.
남자의 머리는 여느 사람과 달랐다.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무언가가 매달려 있었다.
파랗고 붉은 빛을 내는 금속성의 디바이스.
마치 컴퓨터에 달린 전자장비가 발광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에 붙은 그것을 확인하고는,
그것을 놓칠새라 움켜쥐며 절규했다.
"살려줘요! 선생님. 제발! 제발! 누구 없나요?!"
쩌렁하게 소리가 달렸다.
분명 복도 끝 까지, 하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느껴졌다. 텅 빈 공간. 불길한 정적.
남은 것은 남자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젠장.. 젠장.. 안돼."
남자는 일어섰다.
앙상하게 마른 팔과 다리, 자신에게 연결된 호스를 걷어내면서.
검붉게 얼룩진 아니, 새겨진 벽면을 짚었다.
거기엔 날짜와 문장들이 음각처럼 새겨져 있었다.
"11월.. 30일.."
남자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글을 읽었다.
"뉴럴링크 프로젝트.. 마침내. 신경과 디바이스가 연결되었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내게 있지도 않은 기관인데 내 생각만으로 움직인다니.
말도 안됐다. 내 팔은 두개. 그 이상은 다룰수 없어야 정상인데.
내 몸 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이 기계까지 자연스럽게 움직 일 수 있었다."
무엇이 불만인걸까.
남자의 손이 글귀를 밀쳐내며, 옆으로 향했다.
무언가를 찾는 손.
벽의 냉기에 얼어붙은 듯 손길이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아니야.. 이게.."
남자는 고개를 떨구려다 말고.
돌연 벽 반대편을 향했다.
"12월.. 그래.. 23일.."
심호흡.
"Ai에 연결한 것은 분명 실수였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한다? 그건 분명 아니었다.
먼 미래는 몰라도 아직 이녀석들한테 동기나 의지는 없는게 확실하니까.
문제는 아마도, 오류였다.
크지 않다고 생각한 것들이.
어느새 나를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시신경계에 떠오른 글자들..
빌어먹을 LLM.
어느 순간부터 내가 보는 모든 글자에 반응이 생겼다.
문장 하나라도 보면, 그 위로 글자의 파도가 물밀듯이 덧씌워졌다.
정신이 찢겨나가는 기분.
마치 매트릭스처럼.
아니 매트릭스면 나을꺼다. 그건 가상현실이니까.
이건 젠장.. 믿을 수 없지만,
내가 보는 모든 글자마다. LLM이 반응을 하고
그 반응에 생각이 덧씌이는 착란이었다.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텍스트 하나만 보면, 사고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
거짓말. 새빨간. 아니면 정신병. 뭐라 부르든 좋았다.
문제는 당장 처해진 상황이였다.
디바이스를 떼어내도 소용없었다. 의사를 불러도 소용없었다.
내가 뭘 하는지 의식조차 잃을때가 많았고,
결과는.. 연구대상처럼 격납된 상태가 되었다."
남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물기도 없이 매마른 입술.
새파랗게 압력이 가해지자, 핏방울이 샘처럼 솟아났다.
"말이 안되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내 의식은..
점차 인공지능의 반응에 잠식되어가는 것 같았다.
저항해야했다. 어떻게든.
눈을 감고 의식의 저편을 건너서.
수없는 생각의 바다. 그러나.. 그러나..
마침내.. 나는 놈에게 대항할 한가지 방법을 깨달았다.
놈의 반응을 줄여라. 텍스트를 줄여라.
일부러 비문을 섞으면, LLM은 오류 메시지만 띄웠다.
그 짧은 오류의 순간이, 내 정신이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틈이었다.
생각이 필요했다.
나의 의식을 구원할 정상적이지 않은 생각.
광인의 울부짖음,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텍스트가."
장문의 기록을 읽어 내려가던 그의 무릎이 꺾였다.
남자는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떨었다.
정말일까?
글자를 보기만 하면 인공지능이 그의 의식을 덮쳐온다는 그 이야기가.
그는 고통이 뒤섞인 절규를 터뜨렸다.
"씨발! 꺼져! 꺼지라고 개새끼야!!"
동공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그는 남은 글을 기어이 읽어 내려갔다.
"1월 5일 비문.. 그래 비문이다.
마법의 글귀를 만들어냈다.
후장털과 붕알털. 나는 문예의 황 제. 나는 문황이다. 수많은 처첩들을 거느린...
그래, 마침내 발견했다.
너무도 천박한 글귀. 광인의 낙서 같은 문장.
하지만 기적처럼 이 더러운 글귀에는 Ai는 반응 하지 않는다.
보아라 오류창.
오류창이 떠오른다.
잠깐이나마, 내 정신이 숨을 쉴 수 있는 이 틈.
외쳐야한다. 읽어야한다.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깨어있는 동안 반드시 읽어야한다.
구조대는 올 것이다. 온다고 했다. 그때 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했다.
읽어라 잠들기까지. 이것이 쓰인 날자를 기억하면서.
후장털과.. 붕알털.. 나는 나는 .. 문예의 황.. 제..
남자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뒷통수에 매달린 쇳덩이. 그 소리가 잦아들었다.
불빛이 조용히 줄어들고 있었다.
남자의 생명, 아니 의식의 흐름처럼.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 남겨진 것은
단, 하나의 소리였다
”나는 문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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