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건륭 30년, 강남 일대를 순행하던 황제는 민심의 풍요에 만족했으나, 서점에서 비단결 같은 종이에 인쇄된 저속한 소설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당송의 기개가 담긴 시가는 찾아보기 힘들고, 과거 시험조차 상투적인 문장들로 채워지는 현실에 뜻있는 선비들은 탄식했다. "나라의 부는 쌓였으되, 문장의 혼은 사라지는구나!"

황제의 넷째 아들, 영친왕 영염은 그런 세태 속에서도 시서화 삼절(三絶)로 이름 높았다. 그의 시는 백성을 울리고, 그의 글씨는 하늘을 꿰뚫는 듯했으며, 그의 그림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사람들은 그를 '문황(文皇)'이라 칭하며, 메마른 문예계의 한 줄기 빛으로 여겼다. 그러나 영염의 마음속에는 깊은 회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엄격한 치세 아래, 진정한 창작의 자유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붓끝은 늘 검열의 칼날 앞에서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밤, 영염은 몰래 서민들이 즐겨 읽는 기담집을 펼쳤다. 그 속에서 그는 낡은 지혜와 순수한 감성을 발견했다. 화려한 궁정 문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생한 삶의 숨결이었다. 그는 깨달았다. 진정한 문예 부흥은 위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초들의 이야기 속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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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염은 붓을 들고 궁중에서 배운 화려한 사륙변려체 대신, 민간에서 쓰는 평이하고 솔직한 언어로 짤막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 글들을 궁 밖으로 몰래 유출했다. "익명으로 쓰여진 '강남 괴담집'의 속편이라 하라. 제목은 '홍루몽 별기(紅樓夢 別記)'로 붙이고."

익명의 작가가 쓴 이 새로운 이야기는 순식간에 강남과 북경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그 생생한 묘사와 복잡한 인물들의 감정선에 열광했다. 특히, 기존의 딱딱한 도덕률을 벗어난 주인공의 고뇌는 젊은 선비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문인들은 이 글을 두고 격렬하게 논쟁했다. 어떤 이는 문란하고 품위 없는 글이라 비난했고, 어떤 이는 진정한 시대의 목소리라며 찬양했다.

논쟁이 극에 달했을 무렵, 건륭제는 이 기이한 유행에 대해 보고받았다. 황제는 격노했다. "천박한 이야기로 백성들을 미혹하는 자가 누구냐! 당장 잡아들여 엄벌에 처하라!" 붓으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했던 건륭제에게, 익명의 자유로운 창작은 가장 큰 위협이었다. 영염은 아버지의 불호령 아래, 자신이 만든 거대한 파문이 궁궐 깊은 곳까지 미치고 있음을 조용히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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