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브 니그라토
1990년대 세기말의 어느 날에,
난 쿠라모토 카오루의 ‘마계 수호전’을
한국에서 ‘SF 수호지’라 번역한 것을 보았다.
그 크툴루 신화 다룬 소설의 단 한 문장,
‘숲 속의 검은 산양 슈브 니그라토’에 난 꽂혀
내 닉네임으로 ‘니그라토’를 선택했다.
슈브 니그라토는 나중에 알고 보니,
H.P. 러브크레프트의 창작 악마로서,
숩 니구라스의 일본 중역이었고,
숩 니구라스는 흉악한 대지모신이었다.
숩 니구라스는 가톨릭 교회당이었던 폐허에서,
양과 사람의 내장을 태우면 소환할 수 있다고 한다.
난 양띠이고, 염소자리이다.
난 가톨릭을 믿는 집안에서,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이는 다만 재미있는 착상이다.
조로아스터는 동굴에서 앙그라 마이뉴와 대적했고,
싯다르타는 나무 아래서 마라 파피야스에게 이긴 뒤 범천 브라흐마에게 홀렸고,
예수 그리스도는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쳤다.
내가 골방에서 싸운 악마는, 최종악마로서,
그는 내게 나타난 적이 없다.
최종악마가 존재 즉 승리했다는 것은 세상이 없다는 것이어서,
최종악마는 패배했고 존재하지 않으니,
가장 강대한 악마가 최종악마이나,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자명한 것이었다.
숩 니구라스, 수많은 악마들의 어머니, 크툴루의 할머니.
난 세상에 최종악마라는 유혹을 욕망을 야수를 풀었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마약으로 바꾸어 삼아 마시는 범우주적 마약중독자,
자신과 세상을 모두 다시는 못 있도록 없에는 범우주적 자살자,
범우주적 마약중독자는 1단계요, 범우주적 자살자는 2단계인 것이 최종악마다.
난 최종악마를 통해 악당이 승리해도,
악당들을 모조리 죽게 만들 통로를 확보했다.
어차피 이딴 세상, 절대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으니,
난 내 소설에서 하나님에 대해 ‘그분이 관측되지 않아도 믿고 따르는 것뿐이다’라고 했다.
[20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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