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 못 하면 지옥으로 간다.







내 삶이 무저갱에 빠진 건

고독이니 공허니 게으름이니 같은

하찮은 문제들이 아니다.


난 일을 똑바로 해내지 못 한다.

빠르게 하려 하면 실수가 늘고,

꼼꼼히 하려 하면 느려진다.

자주 둘 다를 놓친다.

난 둘을 조화시키지 못 한다.

어리버리함은 천형이다.


어떤 생활인도 그런 날 이해하지 않는다.

직업인이 될 수 있다는 건 일은 일정 이상 할 수 있다는 것.

평균 미달 즉 보편적이지 못 하기에 공감 받지도 못 하며

사람들은 일 못 하는 이들을 외면한다.


평균 이상은 하는 이들이 일을 붙잡고,

그 중 뛰어난 자들이 상류에 오르기 마련이다.

정신력 같은 하찮은 덕목으로 일 못 함이 해결될 거였다면

난 벌써 자리 잡았을 것이다.


태어남을 고를 수 없었듯이,

내가 일 못 하는 것이 내 잘 못은 아니다.

잘 났다는 문장을 살펴보라.


남들은 내가 일 잘 못 하면 핑계라 보지만,

내게 그것은 내 삶에 족쇄인 진실일 뿐이었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어 거부들이 나는 것처럼,

바닥 아래엔 지하가 있어 일 못 하는 자들은,

게으르다는 부당한 손가락질을 받고

생업능력 부족이라는 천형을 받아 거꾸러져

일어날 수 없는 곳에 고인다.


일은 생업이다. 일 잘 못 하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일을 잘 못 하는 것 보다 무거운 천형은 없다.


내 딴엔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남들이 보기에는 굼뜨고 실수투성이일 뿐이다.

살 길이 없고 헤어날 길이 없고

인생은 그저 비참함 뿐이다.


사회적으로는 태어날 때부터 죽은 인생이,

그저 생물학적으로만 명이 붙어,

남은 길은 파멸뿐이다.


살고 싶다면 남은 길은 노숙자 아니면 잡범 뿐.

엄마가 유언으로 남긴 범죄는 저지르지 말라는 말만이,

마음속의 진공을 떠돌 뿐이다.



[2019.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