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오독을 많이 한다. 칸트를 읽으면서는 숭고를 황홀이라고 번역하는게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을 기록해 둔 적이 있다. 내가 제안한 번역어를 검토해 본다면 일리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숭고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그것을 이해한 후에 그 역어를 제시한 게 아니었다. 숭고라는 역어에 대한 문제는 접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오늘자 알릴레오 북스 31분 20초 부분이다.

먼저 이남곡 선생님 번역이다.


子曰 吾有知乎哉아 無知也로라

공자왈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는 것이 없다.

有鄙夫問於我호되 空空如也라도 我叩其兩端而竭焉하노라

그러나 어떤 사람이 물어오더라도 영위(zerobase)에 서서 그 양 끝을 두들겨서 끝까지 밝혀보겠다."


칸트의 숭고란 이성으로 파악한 전체의 총체성을 감성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으려고 할 때 발생한다. 이성으로 파악한 전체가 너무나 커서 감성의 상상력이 그 총체의 내용이 되기를 추구하나 그에 대하여 좌절할 때 그곳이 칸트가 말하는 바의 숭고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다음 글이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숭고를 느낄 수 있는 예가 될 것이다.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literature&no=308516&s_type=search_name&s_keyword=%EC%9D%B4%EC%A0%95%EC%84%9D&page=1

[철학에세이] 에코와 나르시서스 - 문학 갤러리

막스 베버의 『종교사회학논총』서문의 글이다.  보편사의 문제들을 근대 서구 문화 세계의 후예는 불가피하게 그리고 정당하게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 아래 다루게 된다. 즉 어떠한 상황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작용한 결

gall.dcinside.com


윗 글에서 서구의 학자인 막스 베버가 근대 서구 문명의 제 분야를 서구 이외의 다른 문명의 그것들과 비교하면서 그 우월성과 보편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에 더하여 윗 글에서는 오비디우스의 이야기 중 한 꼭지인 나르시서스와 에코의 신화를 빌려서 문명사적 관점을 신화의 내용과 포개어 보고 있다. 신화란 것은 논리를 갖춘 이야기도 아니요 역사의 서술도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문명을 들여다보며 느끼는 우월감 그에 고착된 서구의 지식인들에게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나르시서스의 이야기를 하나의 슬픈 우화로써 들려줄 수는 있는 것 같다.


춘추 시대의 공자는 새 시대를 준비하고 그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정신에는 이성으로 짜여진 총체성, 목적 전체의 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아무리 많은 공부를 한다 하여도 시대를 전복하는 사유를 감성적 상상력으로 모두 채워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공자는 그 크기로 보아서 거대한 목적을 추구하고 있었고 그것은 칸트적 의미로 말하자면 숭고의 영역에 드는 것이었다.


탄허 선사 역시 근대 이후의 후천 세계의 도래를 생각하는 분이었으므로 숭고의 영역에서 살아가셨을 것이다. 탄허 선사께서 술학과 도학을 비교하여 하신 말씀이 있다. 술학은 많은 역리의 세계를, 세상에 펼쳐지는 생멸문의 세계를 많이 연구할수록 밝아진다고 한다. 도학은 만유에서 태극으로 수렴해가는 과정에서 생각이 끊어져서, 아는 것이 끊어져서 모르는 바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위에 언급한 공자 해석으로 돌아온다. 다음은 내가 해석해 본 것이다.


子曰 吾有知乎哉아 無知也로라

공자왈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는 것이 없다.

有鄙夫問於我호되 空空如也라도 我叩其兩端而竭焉하노라

비부가 있어 내게 물어오면 비어 있는 것 같지만 그 양 끝을 두드려서 다해 보이겠다."


자신이 추구하는 거대한 이상의 이성적 틀을 두고서 공자는 스스로 그것을 채울만한 감성적 상상력이 충분히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떤 사람이 그에 대해 물어온다면 그 비어 있는 자리를 열린 장으로 두고 있는 숭고한 이성적 총체의 크기를 그 양 끝을 잡아 보여줄 수는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거대한 목표는 인간 이성으로 설정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개인의 감성적 상상력은 그를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칸트의 숭고는 인간의 감성적 능력의 한계를 말함과 동시에 인간 이성에 대한 찬가를 부르고 있기도 하다. 한 인간이 그 크기에 있어 그토록 절망할 만큼 인간 이성은 거대한 것을 전체로서 파악하고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