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한 사람이 오랫동안 한 목적을 두고 좌절과 희망고문 끝에 심신이 피폐해져갔지.
여느 때처럼 기회를 위시한 희망 고문이 오갔고 더는 그로 하여금 너덜너덜한 정신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어.
이윽고 체념 속에서 광소한 그는 이제 증오와 원망, 절망만을 가슴에 품고서 오른손에 기름통과 왼손에 라이터를 쥐고 자신을 괴롭힌 세상에 불을 지르고 마지막을 장식하려고 했어.
그런 그에게 세상은 말하더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고 밝게 세상을 살라고.
이는 그에게 그동안 반복해온 고통을 영원히 반복하라는 저주의 말과 다름이 없었지.
부조리함이 판치는 세상 속에 더러운 것들 속에서 뒹굴어도 눈만큼은 아름다운 것을 좇았고, 꿈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왔어.
이제 늙고 병들고, 여전히 더러운 곳에서 간신히 연명하는 그를 세상은 조롱하더군. 열심히 살지 못했다고 말이야.
영원히 닿지 못할 먹이를 앞두고 챗바퀴 위를 달리는 시궁쥐의 결말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의미없는 행위 속에서 서서히 병 들어 죽는다더군.
이제 남은 선택지가 얼마나 될까. 늙고 병든 채로 간간히 주어지는 사료 조각만을 붙든채로 그저 죽어갈 뿐인 삶을 연명해나가는 것과 자신을 이리도 비참히 만든 이의 손가락을 깨무는 것.
무엇을 골라야할지 그의 눈은 이미 확신을 굳힌 거 같더군.
뭔데? 이 의미는?
세상에 불이라도 지르게?
내가 모를 거 같아? 내가 분당차병원에 입원했을 때 남편은 면회 오면서 커피를. 언니는 카페에서 마치 인심이러도 쓰듯이 드라마에 나유던 남자 주인공을 실컷 보라더군. 이미 그때 왕비였어.
그들은 남의 인생을 놀이로 생각한지 몰라도. 나는 지금 돌아보면 치가 떨려.
시궁쥐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