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제는 더 이상 태자의 별궁 행을 지체시킬 수 없었다. 그의 분노는 이미 뼈를 깎는 슬픔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영염은 떠나기 전날 밤, 아버지의 명을 따라 자신이 쓴 모든 글을 소각해야 했다. 건청궁 뒤뜰에 불이 피워졌다. 불길 속으로 던져진 것은 홍루몽 별기의 초고뿐만이 아니었다. 어릴 적 궁중 화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던 난초 그림들, 장차 서예의 대가로 칭송되었던 수많은 연습지, 그리고 그가 숨 쉬듯 써 내려갔던 세상의 모든 낭만과 고뇌를 담은 시들이 연기가 되어 하늘로 흩날렸다.
영염은 타오르는 종이의 재가 바람에 실려 흩어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불빛은 그의 눈동자 속에서 흔들렸으나 얼굴에는 분노나 슬픔이 없었다. 마치 영혼이 모든 감정을 비우고 스스로 백지처럼 변해버린 것 같았다. 불태워진 것은 종이가 아니라, 문인으로서의 삶, 황자로서의 영광, 그리고 세상과의 모든 끈이었다.
이튿날 새벽에 그는 허름한 수레에 몸을 실었다. 황족의 행차라기엔 초라했고, 유배를 떠나는 역적의 행렬이라기엔 너무나 조용했다. "염아, 이 어미는 네가 돌아올 때까지 매일 향을 사를 것이다. 부디 병을 털고, 네 본래의 모습을 찾아 돌아오너라!" 황후는 얼빠진 사람처럼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 옷자락을 잡으려 하자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태감들이 황후를 제지했다. 주변에 누구도 눈시울이 붉지 않은 이가 없었다.
수레는 싸늘히 새벽 속으로 사라졌다. 황후의 통곡 소리는 황궁의 높고 두꺼운 담장에 집어삼켜져 다시 무거운 침묵으로 바뀌었다. 이 모든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던 황제가 명했다. "황실 기록에서 영염이라는 이름을 모두 지워라." 굳게 다문 입술 아래, 제국의 질서를 지키려는 아버지의 슬픔이 더욱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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