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보장하는 신에 대한 믿음은 책임 없는 쾌락이자 현실도피다.
그 믿음은 언제나 너무 빠르게 결론에 도달한다. Presto.
망설임 없이, 의심 없이, 고통을 통과하기도 전에 답을 제시한다.
그 속도는 위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폭력이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의미를 봉합하는 속도,
그 자체가 삶을 침묵시킨다.
그러나 책임 이후의 신에 대한 믿음은 다르다.
그곳에는 구원의 약속도 없고, 용서의 예약도 없다.
그 신은 전능한 해결자가 아니라, 점점 작아지는 존재다.
Diminuendo.
의미를 남기지 않은 채, 설명을 제공하지 않은 채,
끝내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
그 침묵이 인간에게 남겨진 전부다.
그러나 침묵 앞에서 삶은 멈추지 않는다.
삶은 Fine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은 종료될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삶은 언제나 Coda로 남는다.
의미가 사라진 자리에서도 책임은 잔향처럼 계속된다.
아무도 그것을 명령하지 않지만, 누구도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중심이 사라진 세계에서 사유는 Adagio여야 한다.
서둘러 의미를 복원하지 않는 속도,
고통을 성급히 정당화하지 않는 태도.
천천히, 그러나 회피 없이 통과하는 윤리.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버티는 책임의 방식.
신 없는 세계는 흔히 무질서한 Rubato처럼 보인다.
각자는 자신의 시간을 훔쳐 살아가고,
규칙은 흔들리며, 박자는 어긋난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만 자유는 가능하다.
완벽한 박자 위에서는 윤리도, 선택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삶은 완전히 단절되지 않는다.
책임은 Legato로 이어진다.
어제의 선택은 오늘을 통과해 내일의 나에게 도달한다.
끊을 수 없음, 단절할 수 없음—
그 비가역성이 바로 책임의 형태다.
우리는 종종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 삶에는 복구 지점이 없다.
되돌릴 수 없는 곳에 남겨진 하나의 Segno만 있을 뿐이다.
그 표식은 회귀의 명령이 아니라 기억의 위치다.
다시 시작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이미 지나온 선택을 외면하지 말라는 표시다.
그래서 이 삶은 Da capo가 아니다.
같은 음악을 다시 연주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Da capo al fine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번에는 변명 없이 다시 살아내는 일이다.
책임 이후의 신은 의미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삶을 무효화하지도 않는다.
그 신은 사라진 채로 남아 인간에게 묻는다.
이 세계를 Con anima—
의미 없이도, 보증 없이도,
영혼을 담아 끝까지 연주할 수 있겠는가.
처음 써 보고 그저 철학을 좋아하는 학생입니다 재미있게 감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