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세상에서 빛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나는 나를 나루토라 생각했고


사스케였고


적어도 카카시쯤은 된다고 여겼다.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것 이라고 


그래서였던 까닭일까 


어릴 적의 나는 지라이야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단 한 걸음,


단 한 순간의 용기,


딱 한 번만 더 내디뎠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달라졌을 것이다.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 것 같아졌다.


사실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우리에게는 ‘조금’처럼 보이던 그 벽이


지라이야에게는


삶 전체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었다는 것을.


그 한 번을 넘지 못한 어른이


나는 정말이지 되고 싶지 않았다






정말, 그 조그만 벽에 가로막힌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과 시대의 풍파 앞에서


영원히 단단할 줄 알았던 바위는


결국 깨지고 흘러


모래가 되었다.


손에 쥐지 않으면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내가 받은 상처를


사람들과 나누는 대신


인터넷 어딘가에 흩뿌렸다.




혐짤과 글카스,


퍼 나른 말들 속에서


디시인사이드에서


마치인싸인듯




꿈을 버리고,


희망을 버리고,


벽을 넘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도망치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정말이지 되고 싶지 않았던 그런 모습이 되어 있었다.


문득 나는 다시 지라이야를 떠올리게 되었다.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소중히 잃어보았다.


그러고 지라이야를 소중히 떠올리니






이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 대신


존경이라는 자그마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조그맣게 올라왔다




그가 만화 속 인물일지라도,


설령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 해도


적어도 그는


노력했고,


자기 이름을 남겼고,


벽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냥 100개의 벽 중 99개의 벽을 넘느라 너무 지쳐있던 것뿐이다.




그가 지쳐 쓰러졌을지라도


몸을 던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존경한다.




그는


여전히 나보다 나은 존재다.




나는 여전히


나루토가 될 수 없고,


사스케도, 카카시도 아니다.


7반도, 해적단도 될 수 없다. 되고 싶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과


포기해 버린 꿈의 잔해를 한데 모아


진흙처럼 다시 빚어보는 것.




그것을


삶에 대한 의지로 구워내


나를 가로막은 벽 앞에 서보는 것




지라이야처럼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단 한 번도 넘지 못해도 좋다.


벽 뒤에 존재할 광경을 보고 싶다. 그 풍경을 그 광경을 그 존재를 내 두 눈으로 보고 싶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