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하나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나 많은 수기들을 적어낸다. 이 이야기가 언제 들어왔는지 언제 기억에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 언제 들어왔는지 기억이 난다. 중3 겨울방학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을 읽을 때 저런 대사가 있었다. 그 대사가 나의 핵심을 찔렀는지라 난 더 이상 책도 읽히지 않았고 글 또한 써지지 않았다. 글이 다시 써지기 시작한건 이 말을 잊은 후였다. 어떻게 해서 잊혀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말이다. 넌 어제 무엇을 하고 어떤 것을 먹었는지 기억하나? 어느정도 기억할 수 있긴 하겠지만 더 오래전으로 갈 수록 기억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다. 나는 잊혀지는 것이 무서웠다. 내가 만난 물건들. 사소하고 다른 사람이 쓸모 없다고 단정지어 버려지는 물건들이 나중엔 나를 죄책감으로 완전히 몰아 넣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웠던것은 죽음이다. 이런 생각을 처음 떠올린 것은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다. 나의 어머니가 거실에서 나의 손톱을 깎아 주시며 난 티비를 보고 있었다. 그 티비에선 어떤 코미디 만화가 죽으며 억지 개그를 펼치고 있었다. 난 그런 익살 떠는 코미디 만화를 극도로 혐오하지만 나는 그걸 보고 문뜩 저런 등장인물은 저렇게 해도 죽지 않는데 만약 이 세상에서 저런다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 그런 생각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궁금했기에 난 계속해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난 그리고 죽으면 도대체 어디로 갈지에 관해 떠올렸다. 만약 진짜로 만약에 사후세계가 없다면. 난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다 의미 없는것 아닐까 하는. 그 어린시절 나의 얄팍한 지식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나의 어린시절을 떠나지 않았고 날 끝까지 괴롭혔다. 난 그때 이후로 두려움에 시달렸다. 전에 있던 안도감과 안정감은 다시 느낄 수 없었다. 그랬기에 나의 어린시절은 두려움에 떤 기억 밖에 남지 않았다. 죽음이 그리도 너무나 밉고 무섭고 거부 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공포가 날 너무나 두렵게 했다. 이때의 기억은 진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정말로 기억하기 싫었겠지. 어느때나 날 착하게 대해주시던 할머니의 참고와 조언은 결국 할머니도 죽겠지 하며 날 더욱 죄책감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고 할머니와 아주 많이 싸웠던 것 같다. 난 예전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었던 나로 되돌아 갈 수 없었다. 정말로 생각하기 싫은 기억이다. 정말 너무나 죽음이 두려웠다. 그래서 난 신경질적으로 변해버렸다.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없다고 느꼈으며 더 이상 내가 발전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원도 별로 나가지 않고 선생님이 내주신 그 조금의 숙제마저도 하지 않았다. 그 어린 나였지만 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생각했다. 그나마 친구들과 있으면 죽음에 대해 잊을만큼 행복했기에 친구와 더욱 가까워졌다. 내가 죽음이 두렵다고 부모님에게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해외에서 일하셨기에 말하지 못했고 어머니와는 언제 딱 한 번 이에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밥을 먹을 때였다. 난 억지로든 이 이야기를 하고싶어서 죽음이 무섭다고 어머니에게 얘기했다. 어머니가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대충 생각할 필요 없다고 말했던 것 같다. 난 그런 단순한 대답에 더욱 어머니와 멀어졌다.
어떤지 평가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