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만큼 글이 쉬이 적히지 않는다.
예전에는 별 것 아닌 것들에도 개의치 않고 글을 적었던 것 같다.
요즘에는 깊은 생각이 아니면 글을 적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적는 시 또한 짙은 파토스가 없다.
나는 어딜 둥둥 떠다니는 것일까.
오늘 의미 없는 글을 적으려 컴퓨터를 열었다.
자판을 두드린다. 허공에다... 팔만대장경에 해당하는 내용을 적고 싶지만.
화면에 적히는 것은 풀벌레의 신음 소리.
음악 레슨 받는 것을 그만두었다.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을 계속하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걸 계속하는 것은 음악 선생님을 괴롭히는 것이라...
음악을 하는 거는 즐거워해서 노래를 안 부르진 않을 것 같다.
만약 선생님께서 내가 노래하는 걸 보시면 왜 그렇게 하느냐 하시겠지만...
2026년이 된지도 한 달이 되어간다.
알릴레오 북스를 이번주에 방영할지 모르겠다.
알릴레오 북스만한 방송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해서 이모 저모를 살펴 말해준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임기 초이므로 힘이 많이 실려 있다. 코스피 지수가 5000을 넘었다 한다.
주식시장은 내가 모르는 세계...
나는 경제는 대통령이 살리는 게 아니라고 했던 윤석열의 말에 많이 동감했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댓글이 달리던 참여정부 시절.
모든 게 왜 다 노무현 책임이란 말인가.
가장 중요한 경제 또한 왜 대통령 책임인가.
재계의 인사들은 무엇을 하는가. 개별 시민 경제주체는 무얼 했는가.
자본가나 시민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경제 자체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류는 정치인 관료 집단인 듯 싶다.
그러나 대통령 한 사람이 그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재명으로 대통령이 바뀌니 경제가 살아나는 것 같기는 하다.
그 이상은 잘은 모르겠다.
2050년이 되면 어떤 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기후변화가 꽤 진행되어 있을 듯 싶다.
미국은 기후협정에서 탈퇴하여 있고 전 세계 인구는 120억까지 증가한다.
기후 재난은 차례차례 닥치는가. 저곳과 그곳에 이곳에 재난이 발생한다.
그 때까지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내 나이는 예순 여섯이 될 것이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높고.
나와 내 동생은 결혼하지 않은 채 살고있지 않을까.
대멸종을 앞둔 인류집단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지혜를 모으게 될까.
지하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게임들이 광고에 뜬다.
게임업계에서는 일찌기 눈치를 챈 것인가.
인간이 드워프 종족의 운명을 가지게 될 것이란 걸.
「클라이밑 크라이시스가 플래닡 어스를 하나의 스페이스쉽으로 만들고 있다」
위의 말은 내가 한 것이다. 2050년이 오기 전에 상식이 되어 있을 것이다.
탄허 스님처럼 죽을 수 있을까.
자기가 예고한 날에 형형한 눈빛을 지닌 채로.
죽을 날짜를 받아 놓고 살아갈 수 있을까.
두렵지 않을까.
정치인 이해찬은 죽기 몇 해 전 자신의 회고록을 내었다.
자신에게 건강이 허락하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음인가.
민주화 투사.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아직 읽지 않았다.
금강경의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이 열린사회를 말함인 듯 싶다.
창업의 시기는 지나가고 왕에게 주어진 과업이 수성 뿐이라면
그 왕의 어깨는 얼마나 무겁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타성으로 젖어든다면.
하고 싶은 것이 있는 대통령을 뽑아 두면 국민은 그 대통령이
하고 싶은 것을 해 보게 해야 한다.
박정희는 그 다음 과업 그 다음 과업으로 나아갔고.
핵개발에 자신의 의지가 미쳤다.
그리고 무너졌다.
글자를 이렇게 저렇게 적어도 마음이 안정되질 않는다.
불안의 요소가 마음 어딘가에 있다. 불안하다. 약간 신경질적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철학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재능이 없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기회가 닿아서 내 철학을 적어 보고 나니 허접하고 정말 별 게 없다.
공을 이루어서 이름을 남겨야겠다는 생각.
거기에서도 벗어나야겠다. 그래야 가능한게 소요유다.
성인무명 신인무공 지인무기.
하루하루 노닐듯 거니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루하루 어딘가 천천히 걷다 오고 싶은데.
세상도 구경하고 자연도 구경하며 이런 저런 생각 정리하고.
내가 누구일까.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이 가능할까.
어제 화엄경을 펼쳤다.
火中蓮이라. 불 속의 연꽃이 될 수 있겠는지.
그리고 懸崖之想이라. 내가 화엄경을 독해할 근기가 되겠는지.
노래는 자유롭게 부르고 싶다.
노래의 규범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물론 음정 박자 가사의 최소한은 지키고 싶지만.
세세한 테크닉이랄까. 나는 그런 것을 지키기 보다는 감정대로 하고 싶다.
왜 그런 고집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노래를 배워도 왜 막 부르고 싶은지.
실력이 되는 사람이 막 부르는 거랑 기초 없이 막 부르는 것이
다르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내 노래가 맛있는 막국수 차림이 될 수는 없을까.
요즘 내 시를 음식으로 비유하면 평양냉면 같던데.
오랜만에 검열을 최소화한 채로 글을 적어 본다.
적을 수 있는 글이 있고 적지 못하는 글이 있다.
나는 예전에 적으면 안 되는 글을 적은 적이 있다.
내 이름을 달아 발표한 적이 있다.
아마 그 업보로 인해 내가 소위 문단에 데뷔를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나는 살면서 범한 죄가 있고 인격적 흠결도 있다.
그 인생사를 떠안고도 어찌 저찌 살아가고 있지만...
음악 레슨을 그만두고 나니까 음악 생각이 간절해진다.
음악을 더 잘 하고 싶다. 화엄경도 장자도 곁들여 읽을 것이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도 읽고 싶다. 내 스스로 고백하기에
나는 왕정을 잘 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하기에
민주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논변을 확인해 보고 싶은지도 모른다.
예전에 아이유라는 가수가 있다는 걸 알긴 했어도
아이유 곡을 많이 듣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이유의 옛날 곡들을 가끔 들어보게 된다.
그 이지은이 그 이지은이었음을 난 왜 알지 못했을까.
지금도 코앞에 둔 사람을 몰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무슨 말을 적을 게 있을까.
해가 진 거리를 보니 외롭다는 것.
저 가로등 빛이 우리 문명이라는 것.
결국 나는 첼로도 피아노도 성악도 아니었다는 것.
나는 음악을 잘 이해 못한다는 것.
내가 음악을 동경하는 것이 꼭 옛날 일본 영화
쉘 위 댄스에서 춤을 동경하는 일본 아저씨 같다는 것.
그리고 나는.
이처럼 생각을 털어놓거나 정리하는 글을 가끔 적지 않으면
제대로 살 수가 없는 사람인 것 같다.
매일 정해진 루틴대로 경전을 읽고 그걸 정리하고 살기에는
마음 속에서 움직이는 것들이 많고 그걸 글을 적어서
정리해야 한다는 욕구가 큰 것 같다.
나는 일하듯이 공부하지 못하고 살아 왔다.
규칙적이지 않게 이 책 저 책을 읽었다.
책을 읽지 않는 시간은 혼자서 멍때리기를 잘 했다.
지금 나에겐 음악이라는 취미가 생겨났지만.
기호품으로 커피 한 잔씩을 즐기곤 하긴 하지만.
왠지 잠시 동안
죽음을 직시한 것 같다.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좋을까.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여기 저기를 소요하며 노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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