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들이 내 몸에 들끓는다. 구더기 하나하나가 내 살을 파먹을 준비를 하며 입맛을 다시는게 피부를 통해 느껴진다. 범인은 시체를 보관하거나 땅에 묻을 여유가 없었나보다.수십마리중 몇마리는 이미 식사를 시작했을수도있다. 햇빛이 내 불행한 최후을 위로해주기라도 하듯 내 몸통의 꽃혀있는 차가운 칼날의 냉기를 잊게끔 날 포근하게 감싸준다. 마음은 고맙지만 지금 내가 필요한건 위로보다는 호기심의 해소다. 누가 나를 죽였는가,왜 죽였는가,이제 나는 어디로 가는가. 영혼의 실재는 내가 항상 부정해왔던것이지만 나는 내가 직접 겪고 있는 현실로인해 이것을 부정당했다. 나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에서의 나는 사람으로서의 본질과 의미를 잃은채 단순히 경찰의 수사에 도움이 될만한 존재로 남아있다. 사후세계도 현실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있는 장소에서의 나는(여기를 장소라고 표현하는게 맞는지도 모르겠다.)현실에서 내가 살아있을적의 모습과 그나마 가장 닮아있다. 의식이 있고 생각할수있고 희미하게나마 내 시체의 감각을 느낄수있다. 시각,후각,촉각,미각,청각 이 5개의 감각중 시각과 미각,청각은 완전히 상실된채 아까 말했던 칼날과 구더기,햇빛이 살에 닿는 느낌과 미미한 피톤치드향을 맡았다. 살아있을때 경험했던 것들이다. 휴가중 해안가에서 정신병자의 칼에 찔리는 경험도 해봤고 어렸을때 구더기를 만져본적도 있고 햇빛을 맞으며 산속에서 피톤치트향을 즐긴적도있다. 시체가 된 지금에도 그 느낌은 변하지 않지만 그 느낌에 대한 내 생각은 기쁨,슬픔,분노 같은 ‘감정이 든다’가 아니라 ‘허무’ 말그대로 이 모든 느낌들이 이젠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는 허무함이다. 피톤치드향이 아무리 좋아도 이걸 누군가한테 얘기할수도 없고 칼날에 찔렸어도 아프다고 말할수없고 도움을 요청 할수도 없다. 내 존재도 오감도 아무 의미가 없다. 허무때문에 이런 종류의 생각을 떨쳐낼수가 없다. 계속 비슷한 종류의 생각만 반복한다.
허무에 지쳐 어떤형태로든 신의 사자가 나를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 아니, 기다려졌다. 살아있을적의 신을 믿지 않았던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죽어서는 간절히 나를 사후세계도 이끌어 영원한 안식이든 부활이든 평화든 사랑이든 고통이든 속죄든 뭐든 나에게 내려주어 선지자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이 허무와 지루함에서 꺼내주며 내 의식이 다시금 의미가 있음을 알려줬으면 했다. 그렇게 기다렸다. 내 시체가 썩어나가는게 느껴졌다. 구더기들이 내 시체를 먹는게 처음에는 싫었었지만 나중에는 걔네들이라도 있어야 내 2개중 최소 하나의 감각은 살아있겠구나 싶어서 받아드렸다. 오늘은 구더기들이 내 손을 다 먹었다. 어쩌면 어제일수도 작년일수도있다. 사실 이런걸 알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시간을 꾸준히 의식했어야했다. 천사나 성령은 적어도 지금은 나를 부르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때 내 청각이 돌아왔다. 내 시체 주변에 마을이 있나보다 그 속 크고작은 소리의 말들을 들으며 내 허무를 달랠수있었다. 신께서 나를 가엽게 여기시는구나. 마을속 누구는 빈곤층이었지만 공부를 열심히해서 인생역전을 하고 누구는 엄마의 장례식 다음날 여자친구랑 영화관을 가고 누구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회개하고 사회운동가가 되었다. 나와 전혀 상관없음에도 허무를 달래기위해 나는 전력을 다해 원래 가지고있던 촉각과 후각이 무뎌질정도로 청각에 의존했다. 마치 내가 아직 살아있고 그들의 인생의 일부분이라는 착각을 느낄정도로 몰입했다. 그러다보니 없어졌던 감정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한다. 살아있을때 느낄수있었던 다양한 감정들이 다시 내 머리를 그리고 마음을 스쳐지나갈때 허무함은 사라지고 동기부여된 내 자아가 열정을 쏟아낼때 내 눈이 떠졌다.
내 눈이 떠졌다. 뒤엔 광활히 펼쳐진 산이있었다. 가을이다. 형형색색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생태계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 보이는 마을도 내가 들었던 사람들이 내가 상상한 외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채로 별로 다르지 않은 사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내 열정이 내 눈을 뜨게 만든뒤 광활한 세상이 그리고 그 속 작은것들의 공존과 각자의 일을 할때 빛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옴과 함께 내 열정을 죽이고 다시 눈을 감게 만들고 싶은게 보인다. 바로 나 자신이다. 구더기가 들끓고 이곳저곳 뼈가 들어난채 나머지 살 부분은 썩어가고 머리카락은 힘없이 떨어지며 창자와 뇌가 축 늘어진채 힘없이 몸 밖으로 빠져나온 모습이다. 단전에서부터 구토가 올라온다. 나는 이것을 해소할수없다. 절대로. 엄청난 피로가 몰려와 의식을 잃을뻔했다. 내 청각이 그렇게나 의존한것이 정말 후회된다.왜 생각이 안났을까. 허무와 지루함을 해소하려는 본능에 내 자아를 빼앗겼었다. 나는 여기 이 산속에 갇혀있고 살아있지 않고 그 어떤것의 일부도 아니며 오감조차 전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미 모종의 이유로 인생을 잃은 사람이다. 나는 이미 죽었다는 것이 머릿속 위로 다시 떠올랐다. 순간 다시 엄청난 허무함이 느껴진다. 방금전까지 있던 열정과 기쁨,분노가 없어졌다. 지루함도 같이 없어졌다.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양의 절망을 느끼면 심심하지는 않나보다. 내면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분노가 터져나온다. 나는 저들의 삶의 누구보다 몰입하고 신경쓰고 걱정하고 저들을 위해 신께 기도하고 같이 기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것 하나 내가 영향을 준것이 없었다. 기도들과 걱정을 아무리 해줘도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 필연적인 사건들은 그들의 인생을 거처갔다. 죽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떤것도 인식되지 못한다는 사실때문인지 저들처럼 인생을 마저 할 수 없다는것에 대한 슬픔과 질투심때문인지 엄청난 분노가 방금전까지 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을때 구토가 올라온것처럼 올라왔다. 할 수 있는것은 구역질 나오는 내 모습을 보며 이 분노를 방치하는것과 기도 밖에 없었다.
‘신이시여 제발 당신이 제가 어디든 저로 존재하게 해주시길 비나이다.’
이 문장을 기도중 몇번이고 반복했는지 까먹을 정도로 반복했다. 그러다 깨달은것이 있다. 나는 내가 신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노나 신앙심이 아니라 죽었음에도 잠들지 못하고 여기 홀로 남겨진채 고통받아야하것에 대한 분노,종교에서 정말 세상 자비롭고 관대하며 우리 모두를 사랑하고 그 어떤것도 자신을 믿으면 용서하고 악인을 벌하는 완벽한 무색무취무흠이라 일컫는 신마저 나를 버린것에 대한 분노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살아있을때 신을 믿지 않았다. 나에겐 신앙심이 없다. 신이 나를 볼 수 없고 내가 신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살아있을때 쳐다보지도 않던 신을 아무도 없을때 불러서 망정이지 누가 있었다면 나를 비웃었을 것 이다. 아마 신을 믿었다면 신이 나를 데리러 올거라는 믿음이 나에게 평정심을 안겨주었을테지만 나의 경우 나 자신이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할 수 있는 존재는 신이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내 미각이 돌아왔다. 입에선 아무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바람이 살짝식 입술주위로 천천히 불어오긴하는데 별로 특별하진않다. 진짜 신이 있고 무신론자였던 나를 버린걸까 진짜 내 걱정과 염려가 저 마을사람들의 인생에 아무 영향도 없을까 아마도 그렇다. 나는 이 사실들을 내 입속으로 넣어버렸다. 천천히 씹으며 내 인생을 곱씹어 본다. 다시 산다면 신을 믿을까 그런다면 신이 나를 데려가 줄까 아니 애초에 존재하긴 할까 교회의 목사들은 생각해보면 신의 유무보다는 신이 우리에게 주는것들에 대해 더 자주 얘기했다. 교회는 결국 내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했고 나는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신의 뜻대로 살지 않은것은 아니다. 이웃들에게 친절하고 살인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았으며 남의것을 질투하지 않았고 거짓말도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하지 않았다. 내 인생의 그런 부분에는 후회가 없다. 따지고 보면 나는 지옥에 떨어지고 신에게 버려질만한 사람이 아니다. 다 씹어 충분히 부드러워진 것들을 삼킬때 내 목구멍아래로 구토와 분노가 함께 넘어간다. 이제 내 오감들은 모두 돌아왔다.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맡을수 있다. 그건 살아 있을때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에게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앞으로 어떤게 될지 가늠할수없다. 내시체가 다 썩어 흙으로 돌아갔다. 나는 육신없는 자유로운 영혼이요 내가 속세의 힘들어하는 모든이를 지켜보는 초현실적 존재로 거듭났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중간계에서 뭘 느끼고 겪든지간에 오늘도 지구는 짜증나리만치 무사히 돌아간다.
난 역시 문황인듯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