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

터벅. 터벅.. 터벅…
저는 길 위에서 멈춰 섰습니다. 왜 멈춰 섰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순간, 발바닥 아래로 오래전의 통증이 희미하게 아른거렸습니다. 너무 익숙한데, 정작 그게 통증이 맞는지조차 알 수 없는 감각. 평소 같았으면 그냥 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나치기엔 가슴 한켠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감각을 안고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정하지 않은 채. 그리고 그 “통증”의 정체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를 되짚어보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걷는 걸 싫어했습니다. 그건 단지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유연성 평발. 이름조차 부드럽게 들리는 그 진단명은 제 발바닥 아래 보이지 않는 가시밭을 깔아두었습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이 땅을 향해 무너져 내렸고, 그 무너짐은 발목을 타고 무릎을 지나 허리까지 잔금처럼 번져갔습니다. 그래서 어린 저는 늘 지름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지름길에는 통증을 줄인다는 목적지가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대부분의 유연성 평발이 성장하며 호전된다고 했고, 저는 그 “대부분”에 속했습니다. 어느새 가시밭은 조용히 사라졌고, 발은 비로소 땅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통증이 사라진 뒤에도 저는 여전히 걷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아니, 싫어한다고 믿었습니다. 부모님이 산책을 권하면 본능적으로 거부했고, 먼 거리를 걸어야 할 때면 몸 안 어딘가에서 익숙한 저항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통증이 아직 거기 있는 것처럼. 마치 제 발이 아직도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처럼.
왜였을까요.
조금 더 걷다 보니 깨달았습니다. 저는 걷는 것을 싫어한 게 아니었습니다. 싫어하기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걷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 문장에 마침표를 찍어버린 채, 이미 사라진 통증으로 제 자신을 속인 것입니다. 그게 더 쉬웠으니까요. 제 뇌는 자기 나름의 지름길을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 걸음이, 이 생각이 단순한 고등학생의 걷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보다 훨씬 더 길고, 더 깊은 여정이라는 것을.
저는 두려웠습니다. 또다시 멈춰 섰고, 발바닥 아래로 익숙한 통증이 아른거렸습니다. 하지만 오기가 생겼습니다. 오늘만큼은 저를 속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걸음을 옮겼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첫 걸음부터 기억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조금 달랐습니다. 주의력은 흩어졌고, 충동을 제어하기 어려웠으며,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고문처럼 느껴졌습니다. 열다섯이 되어서야 그 다름에 ADHD라는 이름이 붙었고, 2년 뒤에는 양극성 정동장애라는 이름이 따라왔습니다. 유연성 평발과는 달리, 이름부터 날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저에게만 향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너 요즘 왜 이렇게 자주 늦니?”
저는 입을 열려다 닫았습니다. ADHD 약을 늘렸더니 조증이 올라왔고,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새벽 다섯 시에야 겨우 잠들었다고, 그래서… 첫 문장을 꺼내려는 순간, 그 뒤에 줄줄이 매달린 문장들이 보였습니다. 너무 긴 길이었습니다. 저에게도, 선생님에게도. 그래서 저는 그냥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한마디. 마침표. 그것이 제 지름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날이 갈수록 더 자주 늦었고,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습니다. 결국 담임 선생님은 부모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거기엔 분명 많은 말이 오갔을 겁니다. 조증, 우울, 치료 경과, 약 조절, 생활 적응. 하지만 교실 뒤에서 그 통화를 엿들은 친구의 귀에 남은 것은 단어 하나였습니다.
정신병.
날이 선 그 단어가, 엿들은 친구의 귀를 베었습니다.
다음 날, 교실의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어제까지 자연스럽게 말을 걸던 아이들이 눈을 피했고, 제가 다가가면 대화가 멈췄습니다. 며칠 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복도를 걷는데 계단 옆 벽 너머로 제 이름이 들렸습니다. 발이 먼저 멈춘 건지, 심장이 먼저 멈춘 건지 모르겠습니다. 웅성거림 사이로 그 단어가 벽을 뚫고 왔습니다.
정신병자.
웃음소리가 뒤따랐습니다. 저는 돌아섰습니다. 왔던 길을 되짚어 걸었습니다.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 위에서도, 그때처럼.
친구들은 저의 수천 가지 면을 지우고 제 앞에 “정신병자”라는 가짜 목적지를 세웠습니다. 그곳에 닿는 가장 빠른 길. 혐오라는 지름길을 택했습니다.
발의 통증과는 다른 종류의 아픔이었습니다. 발은 걸을 때만 아팠지만, 이 아픔은 걸음을 멈춰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름길을 택했습니다. 소문을 퍼뜨린 그 친구를, 미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같이 시험 전날 떨며 전화하던 목소리도, 입학식 날 혼자 있던 저에게 가장 먼저 내민 손도, 전부 지워버렸습니다.
“저 애는 나를 망친 애야.”
한 문장. 끝. 벽 너머에서 저를 한 단어로 규정했던 아이들과 똑같은 일을, 저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에게도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엿들은 이야기가 무서워서,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지름길이 더 쉬웠으니까요.
그렇게 며칠이, 몇 주가, 몇 달이 지났습니다.
후우. 저는 걸음을 멈추고 숨을 내쉬며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집을 나선 뒤로 이미 두 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멈추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한 걸음을 더 내딛자, 기억이 다시 밀려왔습니다.
그해 겨울, 저는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온 가족이 반대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식탁 앞에 둘러앉은 얼굴들이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습니다. 고등학교는 원래 다 힘든 곳이라고. 누구나 장애물에 부딪히며 성장하는 공간이라고.
“너는 의지가 약한 거야. 정신력이 약해서 회피하는 거야.”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누군가의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엄마의 한숨.
어쩌면 그들의 말이 맞았을 수도 있습니다. 자퇴는 지름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퇴한 애”라는 또 하나의 가짜 목적지가 제 앞에 세워질 것도 뻔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경멸하는 눈빛, 비웃는 눈빛, 불쌍해하는 눈빛. 그 눈빛들이 복도에서, 교실에서, 매 순간 저를 향해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눈빛들을 피해 학교를 떠났습니다.
학교를 떠나자 교실도, 복도도, 친구들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눈빛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울 속에서 더 잔인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약의 부작용으로 살이 찌면서 거울 속 제 모습이 점점 낯설어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화장실에 갈 때 불을 켜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세면대에 손을 짚으면 거울이 바로 앞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어둠이라면 그 모습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난 내 약점을 직시하고 있어.”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불을 껐습니다.
“나는 부족한 인간이야.”
걷기를 싫어한다는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을 때처럼, 친구를 ‘나를 망친 애’라 규정했을 때처럼, 저는 또다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자기혐오는 지름길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직함의 얼굴을 하고, 저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반성이라는 이름의 족쇄로 발목을 묶고, 스스로를 가둬 두었습니다. 빠져나올 틈이 없게.
저는 그 어둠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일주일 같았고, 일주일이 하루 같았습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모른 채.
그리고 지금, 저는 목적지도 없이 밖으로 나와 이 길 위를 걷고 있습니다. 처음엔 그저 발이 저를 끌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두 시간이 지나도록 걸어온 끝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걸음은 충동이 아니라, 오래 미뤄둔 대답이었다는 것을.
느리게, 서툴게. 자주 멈추긴 했지만, 걷는 만큼 어둠은 조금씩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선택해온 지름길들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걷기를 싫어하기로 한 결정의 끝에도, 사람을 미워하기로 한 결정의 끝에도, 나를 부족하다고 규정한 문장의 끝에도. 마침표를 찍고 도착했다고 우겼지만, 그곳은 전부 가짜 목적지였습니다.
발바닥은 아프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아프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저는 조금씩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사람들을. 심지어 저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조차. 이해한다는 것이 용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해는 적어도, 혐오로 쌓아 올린 벽에 창문 하나를 내어줍니다.
솔직히, 매일 지름길을 무시하며 올곧은 길만 걷는 사람이 되지는 못할 겁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목표는 세웠습니다. 제 자퇴가 가짜 목적지로 끝나지 않게 하는 것. 긴 여정의 출발점이 되게 하는 것.
터벅. 터벅.. 터벅…
저는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아프지 않은 발로. 혐오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터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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