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인가.


어쩌면 새벽일지도.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라 잘 모르겠다.


나는 오랜만에 집을 나섰다. 뇌는 여전히 뜨겁다. 새벽공기가 얼굴을 씻어도 뇌는 여전히 뜨겁다.


태양을 생각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뇌가 익은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봄바람도. 여름매미도. 가을낙엽도. 겨울눈도.


스쳐 지나갈 뿐이지만 햇빛의 얼굴만은 눈앞에 선명하다, 언제까지고. 


“집에 데려다 줄 거지?”


그럼요. 당연하죠. 지금까지 날 기다려줬잖아요.

애초에 그러려고 만난 거거든요.

사랑해요. 정말로. 말은 못하지만.

여름밤이잖아요, 못할 게 뭐 있겠어요?

밤에도 해는 있으니까.


은행이 밟힌다. 평소라면 피했으려나. 안 피한 지가 오래되었다. 뭐, 아무래도 좋다.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심은 한심한 작자들의 노림수겠지.


“넌 실패했어, 아쉽지만.”


웃기네. 

웃고 싶다.

웃으면 해결될까?

그럴 거 같지는 않아. 

이 정도면 됐지, 안 그래요?


싫다면서. 뭘 더 어떻게 해.

태양이 나를 태워버리고야 말았네요.


눈을 떠보니 사거리. 트럭이 마치 나를 치고 갈 것만 같이 달린다. 아니, 쳤으면 하는 바람일지도.

신호가 세 번은 바뀐 것도 같다. 하지만 건널 수 없다. 트럭이 나를 치고 갈까 봐.


“여자친구랑은 잘 지내? 좋아 보이더라.”


하하, 이제 와서?

그래도 뭐. 뭐. 좀만 더 일찍 말하지.

타이밍이 별로라니까 항상. 


“헤어지고 나한테 와, 잘해줄게”


어떡하지?

뭐지 이게?

난 아직

아직 못 잊은 건가?

이제서야?

나를?

뭐지 이게?

뭔데

오ㅑ?

.

정신 차려, 이미 늦었어

조소해, 비웃어야지, 그땐 언제고 이제 와서?

한 번쯤은 태양도 후회해야죠. 불태웠던 것들에 대해서 말이에요.

근데. 설렜잖아. 솔직해야지. 

사실은 해가 보고 싶었잖아, 누구보다도?

모르겠어.

조금만 기다려 줘요, 조용히.


바람이 분다. 횡단보도를 건넌다. 떠밀렸지만 어쨌든 건넜다. 나는 건넜고, 반대편에 와 있다.


“응.”


너무 늦었을지도. 아 늦은 것 같죠. 아무래도.

대답해줘요.

물론 물어보진 않겠지만 말이에요.


눈을 떴는지도 이젠 모른다. 어디에 있는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만 같다. 하나도.

고흐의 해바라기가 눈에 어른어른하는 것만 같다-

진짜로.


”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웃어줘요. 오랜만에 자유롭네요,

날 좋아하는 그녀는 지금쯤 잠들었겠죠.

전 저만의 낮으로 빠져드네요.

옛날의 황홀함까지는 아니지만,

뒤에서 타는 햇빛은, 더 강렬한 것 같기도.


해바라기는 어디 간 건지, 보이질 않는다. 

나는 사람들의 물줄기를 따라. 

틈에 섞여 들어가 전진하고, 이리저리 휜다.

쇳물 안에 들어온 것만 같다. 여기는 제철소. 제철소다.


“왜?”


왜냐고요. 

그녀랑은 시작부터 달라서요.

해가, 해가 보고 싶었어요.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말이죠, 절대 해가 될 수 없더라고요. 내겐.

하늘 아래 어떻게 태양이 두 개겠어요?

아, 이젠 아예 없네요.

밤이에요!


쇳물은 식지 않고 흘렀지만, 틀에 걸린 건 나였다.

홀린 듯 건물을 지나치며, 나는 달렸다. 그래야 할 것만 같았으니까. 그래야만 하니까.

달아오르는 건 무시해도 좋으니까.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 그래 화이팅. 해야죠.


그래야 하나?


붉은색 하트만이 남겨져 있는 검은색 바탕,

해는 또다시 졌다. 또다시 실패했다. 나는.

아니. 하트가 무슨 의미인지... 

몰라?

알 것 같기도 하네요.


뇌는 녹아 있었다. 그 뜨거운 햇빛이 나를 녹였다. 녹여놓고서는 책임은 고스란히 전가한 채. 책임질 이 하나 없는 뇌는 사고를 정지하는가? 아니, 계속해서 사고한다. 단지 녹기 전 마지막의 강렬한 기억만을 다시 다시 또다시 되새기면서. 느끼지도 죽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


이럴 줄 알았지. 언젠가는 말이죠.

해가 다시 뜰 수 있을까요?

그건 이미 져버린 노을만이 알겠지.


이카로스는 나의 곁에, 아니 나 자체로 강림해 있었다. 녹아내리는 날개는 이미 제기능을 못하더라도, 해를 갈구하며. 그렇게 사고하며 난다. 추락을 알면서도, 높이, 더 높이.


사랑해요,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