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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라커]홍의정보도서관
11번함에 물품보관.
일시 2026/03/04 15:21
비밀번호 01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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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라커] 48시간무료
48시간이후 1,000원/일
신용, 교통카드 결제
음식물 보관 금지
택배 알림이 왔다. 얼마 전에 주문한 나이키 모자다. 내 주소는 홍의동 율곡로 143-2, 고즈넉한 언덕에 자리 잡은 리모델링 적산가옥에 살고 있다. 층계가 좁고 유럽 주택처럼 폭도 좁고 세로로 긴 건물인데, 집 앞으로는 조선 말기의 왕릉이 보인다. 건물을 둘러싼 나무들은 철마다 풍경을 바꾸고, 눈이 내리면 하얀 한옥의 처마와 소나무가 반겨준다. 돌담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마치 오래된 도시에 놀러 온 기분이다. 돌담길을 따라 오르면 작은 철문이 나오고 이어서 언덕이 나오는데, 언덕 끝에 홍의 정보도서관이 있다. 나는 이곳에 4년째 신세를 지고 있다. 책도 빌려보고, 시간도 보내고, 산책도 하고.
4년 전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선 사람들이 나이키 한정판 운동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누가 당첨되었나가 매주의 관심사였다. 신기하게도 당첨자는 한 주 걸러 하나는 나오는듯 했다. 그래서 더더욱 사람들은 열심히 응모하고 있었다. 다같이 점심 먹는 자리. 오늘 13시 응모네요. 그래요? 저도 응모해야겠네요. 저도 응모했어요. 나도 응모했다. 검은색이랑 하얀색으로 배색된 거. 돌고래, 아니 범고래? 네. 신고있는 회색 뉴발란스 992 운동화는 아직 쓸만해 보였다. 범고래를 신은 모습을 상상해 본다. 굴러들어 온 무엇! 매일 행운을 신고 다니면서 회사에 자랑도 해야지.
발표는 곧 나왔다. 결과는 당첨. 와! 진짜 대박. 처음 했는데 되셨어요? 사람들의 부러움을 신고 복도를 누볐다. 지금 결제하지 않으면 내 행운을 누가 뺏어갈 것 같아서 탕비실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당장에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이십팔만 원. 왠지 운동복도 사고 싶어져서 스웨트 저지 상하의 세트도 두 벌 주문했다. 딸깍 몇 번이면 되는 일이었다.
그게 아마도 2월 25일인가 26일인가, 아무튼 삼일절 가까운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토요일, 일요일은 그렇다 치고, 3월 1일 공휴일도 원래 쉬는 날이니까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3월 2일은 대체 공휴일이었다. 당시에 홍의동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콘센트, 빨래 바구니, 와이파이 공유기, 암막 커튼 같은 잡다한 물건들을 주문하곤 했는데, 여기저기서 주문한 택배가 쌓여서 매일 퇴근하고 오면 뭐가 왔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일부러 택배를 뜯지 않고 금요일까지 모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뜯기도 했다. 근데 나이키는 언제 오지.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계속 신경 쓰였다. 내 당첨 소식을 아는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물어봤다. 그거 언제 신고 와? 그럴 때마다 알림창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오전 11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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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코리아에서 온 문자가 있었다. 퇴근해서는 도착한 물건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욕실 문 앞에 발 매트를 펴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집주인에게서 온 문자였다.
집주인: 안녕하세요.
201호 택배가 3층으로 잘 못 배송된거 같다고 하셔서요.
혹시 잘 못 온 택배가 있으신가요?
리모델링 후 첫 세입자들이라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는데, 택배가 섞인 걸까. 거실 한쪽에는 방금 깔아 둔 요가 매트가 있었다. 혹시 저걸 보고 오해했나? 요가 매트는 누가 봐도 요가 매트처럼 내용물 보이도록 포장됐었다. 그래서 아래층 택배가 우리 집으로 왔다고 생각한 건가? 아니면 뭐지. 아무튼 답장을 보냈다. 아니요 없습니다! 혹시 발견하면 말씀드릴게요.
다음 날 퇴근하고 집에 와 보니 나이키 박스가 있었다. 오, 나이키! 그런데 박스는 하나였다. 운동화랑 저지가 같이 배송된 건가. 집 안으로 들여다 놓고, 샤워를 한 다음 개운한 마음으로 택배 상자의 테이프를 벗겨냈다. 상자를 여니까 저지 상의가 보였다. 생각보다 예쁘네. 그리고 저지 상의가 하나 더 있고, 그 아래로는 저지 하의, 그리고 하의. 운동화는 없었다. 행운은 안 오고 충동이 먼저 왔네.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입어 보니까 또 달랐다. 역시 모델이 중요한가. 기분이 상했다. 운동화는 언제 오지. 이상했다. 보통 물건을 사면 같이 도착하는 거 아니야?
운송장 번호는 2개였고 두 택배 중 하나는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배송 완료로 처리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지? 문득 내가 사는 건물에 CCTV가 없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혹시 누가 훔쳐 갔나? 그러고 보니 어제 집주인이 물어 본 건 뭐였지. 혹시 2층 사는 새끼가 내 운동화를 훔쳐 간 건가. 아닌데. 그런 거라면 오늘 훔쳐 가야 했지. 아니면 어제 도착한 건데 훔쳐 갔다가 저지만 갖다 놓은 건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CCTV가 없으니까. 누가 택배를 가져갔는지 알게 뭐람? 나도 가져갈 수 있겠다. 두 개의 택배 상자 중에서 누가 하나는 집어 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필 집주인이 어제 그걸 물어 본 게 계속 신경 쓰였다. 집주인은 4층에 산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집에 오는 거 같던데. 집주인이 훔쳐 갔나. 젊은 남자니까 이 새끼가 나이키 운동화 욕심낼 수도 있잖아. 택배 기사들이 우리 건물에 비밀번호도 안 물어 보고 마구 들어와서 배송하는 것도 이상하다. 옆집은 하루 한 번은 배달을 시켜 먹는 거 같던데.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범인의 목록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회사는 비교적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였다. 마치 코워킹스페이스처럼 자유롭게 업무를 볼 수 있는 라운지 공간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직원이 랩톱을 가지고 일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음료를 뽑아 들고 소파에 앉아 일을 하거나 창가에서 청계천을 보며 일했다. 나도 종종 청계천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일하는 걸 좋아했다. 청계천이 보이기 때문에 좋아했다기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자리였기 때문에 좋아했다. 어제 산 나이키 저지를 입고 출근했고 저지를 입고서 내 택배의 행방에 대해 고민해 봤다. 우선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을 것이다.
- 택배가 아직 발송되지 않았다.
- 택배가 발송되었다.
1번의 경우라면 그다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냥 기다리면 된다. 그냥 기다리기 뭣하다면 고객센터에 문의해 볼 수도 있겠다. 2번의 경우라면 다른 걸 고민해 봐야 한다.
- 배송 도중 물류센터에서 사고가 났다.
- 배송 과정에서 도난이 발생했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봤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업무 시간에 계속 전화기를 붙잡고 있을 순 없어서 기사에게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제 택배중에 아직 도착안하였는데
배송완료로 돼있는게 있어서문의드립니다
운송장번호 5608OO94OOOO입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좋은하루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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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eanutjam687.github.io/blog/short-stories/%ED%96%89%EC%9A%B4/%ED%96%89%EC%9A%B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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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계속 올려 보려고 합니다. 아무 댓글이나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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