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도망치는 삶을 살았다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무너질까 두려워 한 걸음씩 물러선 후퇴였는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 합니다
나는 내가 거짓이라 믿은 것들로부터 등을 돌렸으며


그 등을 돌림을 신념이라 불렀다.

세상은 내게 도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치고,
세상은 창조론을 오래된 신화처럼 취급하는것에 부아가치밀었으며


내가 붙들고 있던 세계는
누군가의 교과서 한 장 앞에서
쉽게 구겨질 수 있는 종이처럼 느껴졌다.

나의 세계는 기독교로 이루어져 있다.
스무 해를 모태신앙으로 살아왔으니


그 신앙은 선택이 아니라 공기와 같았다으며

나의 모든것이었다.


나는 숨 쉬듯 믿었고,
믿음은 나의 판단이 되었으며
나의 양심이 되었고
나의 두려움이 되었다.


기독교를 믿기에 베리칩을 두려워했고,
기독교를 믿기에 정치적 입장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한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이미 그려진 선 안을 맴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믿음 안에 있으면서도

그 믿음 때문에 숨이 막히는 밤이 있었다.


이 세상과 싸우기엔
나는 너무 약했다.
아니, 세상과 싸운다고 말하며
정작 나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단 한 사람의 친구 앞에서
나의 세계는 쉽게 흔들렸다.
그가나를 설득시키는것이너무두려워

나는 이미 방어하고 있었다.


무너질까 두려워
먼저 벽을 세웠다.

그 친구는 중학생 때 처음 만났다.
애니메이션으로 밤을 지새우던 시절,
우리는 꽤 닮아 있었다.


그러나 닮아 있다는 감각은
어느 순간부터 비교가 되었고
비교는 서서히 균열이 되었다.

그가 좋아하던 장르와
내가 좋아하던 장르는 달랐다.


사소한 취향의 차이였지만
나는 그것을 사소하게 두지 못했다.
나는 왜 그를 화나게 하고 싶었을까.
왜 그의 즐거움을 깎아내려야만
내 자리가 지켜질 것 같았을까.


나는 치기 어린 말들을 던졌다.
농담이라 부르기엔 날카로운 말들이었다.
장난이라 말하기엔 너무 정확히 상처를 겨냥한 말들이었다.
그의 얼굴이 굳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가 나의 종교를 건드렸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집이 우리보다 더 안정되어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담배를 피우며 자유롭게 웃는 모습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은 세계처럼 보여서였을까.

그는 자유로워 보였다.


나는 순종적이어야 했다.
어머니의 걱정은 하나님의 분노처럼 느껴졌고,
어머니의 분노는 하나님의 슬픔처럼 느껴졌다.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기대 안에서만 존재했다.

착한 아들.
신실한 신자.
말썽 피우지 않는 아이.


내가 좋아하던 만화를 그리는 일조차
어느 순간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좋아해야만 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 혼란은 두려움이 되었고,
그 두려움은 분노가 되었다.

나는 그 분노를
그 친구에게 돌렸다.
그를 향한 실금은
어느새 거대한 벽이 되었고,
나는 그 벽 뒤에서


의로운 척 서 있었다.

질투를 인정하지 못한 채,
열등감을 신앙으로 포장한 채,
나는 그를 밀어냈다.


돌이켜보면
나는 세상과 싸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초라함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나는 누구도 이기지 못했다.


가장 많이 다친 사람은
어쩌면 그 친구가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가끔,
아주 가끔
그 벽 너머가 궁금해진다.


내가 구원받지못할 죄인이라 단언 하던 그친구보다

내가더 죄스럽기에

오늘도 나는기도를 한다 

주여 다만 '나를' 구원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