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것조차

배워가는 과정조차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집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주 싸웠습니다.

접시 깨지는 소리가 나면

나는 방문을 닫았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서는

누군가의 책상을 발로 찼습니다.


그게 왜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도 사실은 피해자였다.”

그런 말은

입 밖으로 꺼내본 적 없습니다.


그런  역겨운 레파토리는

너무 많이 봤으니까요.

참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

밤낮이 뒤집혔습니다.


쿠팡 야간 일을 했습니다.

일급 14만 원.

한 달이 지나

통장에 140만 원이 찍혔습니다.


그 돈으로

3만 킬로 탄 좀비 PCX를 샀습니다.

중고였습니다.


배달을 하려면

유상 운송보험을 들어야 했습니다.

하루 만 원짜리.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오토바이는 나갔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머플러를 하나 달았습니다.


아크라포빅.

값은 비쌌지만

소리는 컸습니다.

이상하게도

내 머릿속을 괴롭히던 소음이

그 소리에 묻혔습니다.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좋았습니다.


그렇게

스무 살의 비릿한 시간을 지나

군대를 갔습니다.

거기서

세상을 조금 배웠습니다.

전역을 하고 나서도

하는 일은 같았습니다.

배달


홍대의 멘해라공원에서  잠시쉴무렵

그때 어떤 여자가 다가오길래

담배 한 까치를 빌려줬습니다.


사실 빌려준 것도 아닙니다

그냥 달라길래 던져줬습니다.

그 여자는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두어번 튕기더니

불을 붙였습니다.


불이 잘 안 붙었는지

욕을 한 번 하더군요.


“아 씨.”


그 욕이 묘하게 웃겼습니다.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고

그 여자는 연기를 한 번 길게 뱉었습니다.

그러곤 나를 쳐다봤습니다.


위아래로.

꼭 중고차 보듯이.


“오빠.”


“예.”


“오토바이 타요?”



나는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손가락에 걸고 빙빙 돌렸습니다.

딱히 자랑할 것도 없는


3만 킬로 탄 좀비 PCX 키였습니다.


“타죠.”


그러자 그 여자가 웃었습니다.

참 싸가지 없는 웃음이었습니다.


“비 오는데도 타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먹고 살려면 타야죠.”


그 여자는 잠깐 가만히 있더니

갑자기 말했습니다.


“그럼 나 태워줘요.”


나는 담배를 한 번 빨았습니다.


홍대에서 처음 본 여자가

오토바이 태워 달라는 말은

대체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진짜 미친 거고


또하나는

진짜 심심한 겁니다.


그래서 나는 물었습니다.

“어디 가게요.”

그 여자는 담배를 털어내더니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습니다.

“몰라요.”

그리고 웃으면서 덧붙였습니다.

“그냥 달려요.”

참 이상한 여자였습니다.

화장은 번져 있고

눈 밑은 푹 꺼져 있는데

사람 눈이 아니고


슬픈 사슴 같은 눈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주변에 있는 지쿠헬멧 하나를 던져줬습니다.


“꽉 잡아요.”

그 여자가 물었습니다.


“왜요?”

나는 시동을 걸면서 말했습니다.

"나 브레이크 잘 안 잡거든.”


엔진이 울었습니다.

아크라포빅 머플러 소리가

홍대 골목에 울렸습니다.


그 여자가

내 허리를 잡았습니다.

생각보다

꽉 잡더군요.

엔진이 한 번 컥 하고 숨을 쉬더니

곧 아크라포빅 소리가 골목을 긁어냈습니다.


밤공기가 젖어 있었습니다.

비는 막 그친 뒤였고

홍대 도로는 싸구려 거울처럼 번들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헬멧을 대충 눌러쓰더니

내 뒤에 올라탔습니다.


“와, 이거 진짜 오토바이네.”


당연한 말을 하더군요.

나는 대답 안 했습니다.

그냥 스로틀을 조금 더 감았습니다.


부우웅.

아크라포빅 소리가

홍대 골목에 퍼졌습니다.


그 여자가 갑자기

내 허리를 잡았습니다.

처음엔 좀 어설프게 잡더니

코너 한 번 돌자마자


꽤 세게 잡더군요.

"오빠."

"예."

"안 죽어요 우리?"


나는 잠깐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냥 말했습니다.

"아마요."

그 여자가 웃었습니다.


헬멧 안이라

소리는 잘 안 들렸는데

등 뒤로 웃음이 느껴졌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웃음이 참 매콤하니 좀 마음에 들었습니다.


홍대 큰길로 나가

엑셀을 조금 더 열었습니다.

도로 위에 남아 있던 물이

타이어 뒤로 튀었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나 오늘 집 가기 싫어요.”


이런 말은

대개 두 가지 뜻입니다.

진짜 집 가기 싫은 거거나

아니면

인생이 집 같아서 싫은 겁니다.


그래서 나는 묻지 않았습니다.

대신 물었습니다.

"배고파요?"


잠깐 정적이 있다가

뒤에서 대답이 왔습니다.


“…조금.”

그래서 나는 방향을 틀었습니다.

배달할 때 자주 가던


24시간 국밥집 쪽으로.

비에 젖은 도로 위에서

PCX는 생각보다 잘 달렸습니다.


3만 킬로 탄 좀비라 해도

아직 엔진은 살아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뒤에서 말했습니다.


“오빠.”


“예.”


“나 아까 멘솔 담배 일부러 물어본 거예요.”


“왜요.”


잠깐 침묵이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말했습니다.


“멘솔 피는 사람은


대체로 착하거든요.”


나는 피식 웃었습니다.

착하다니.

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습니다.

엔진 소리가 계속 울렸습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문득 이상한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이 여자를 태운 게

아마 내 인생에서

꽤 귀찮은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묘하게도

그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비 냄새가

아직 도로 위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PCX는

계속 앞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