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자친구는 냄비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얼추 멘헤라,

그쯤 되는 사람입니다.

12월 한겨울,

신부의 새하얀 웨딩드레스처럼 펼쳐진

흰 도로 위를

그녀와 함께 질주하는 일은

참으로 유쾌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울 때면

나 역시 슬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이 그리워

자신의 봄 같은 청춘을

전부 내어주어 버린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서는

봄의 푸른 냄새 대신

밤꽃 같은 비릿한 냄새가 납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떨고 있느냐 묻자

그녀는 말했습니다.

쫓아온다고.


무엇이 쫓아오느냐 다시 묻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삶.”

그래서 나는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있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녀의 몸은 생각보다 가벼웠습니다.

마치 오래전에 속이 비어버린 사람처럼.

그녀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멀리 바람소리가 조용히 밤공기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나는 물었습니다.

“지금도 쫓아와?”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응.”

“어디쯤이야?.”

그러자 그녀는

내 등을 붙잡은 채

아주 천천히 말했습니다.


“바로 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보이지 않는 것일 테니까요.

세상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

사람을 더 빨리 따라잡는 법일터이니.

그래서 나는 다시 시동을 걸었습니다.

엔진이 낮게 울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흰 도로 위로 미끄러져 나갔습니다.

그녀는 내 허리를 더 세게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조금만 더 빨리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엑셀을 조금 더 열었습니다.

밤은 여전히 길었고 

흰 도로는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어쩌면 우리를 쫓아오는 것은

삶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던

어떠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